[신년 수필-전병두] 작은 마감
- 24-01-03
전병두(서북미문인협회 회원)
작은 마감
십이월도 중순이 지나고 있다. 곧 성탄절이 찾아오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멈추지 않고 다가오고 있다. 적절한 단어가 무엇일까? 마감이라는 말로 긴 한 해를 맺을 수 있을런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의 뿌리는 생각보다 깊은가 보다. 이두에서는 마감(磨勘)이라고 적었다고 하는 데 이 말은 중국 송나라에서 관리의 성적을 매길 때 사용하던 표현이라고 한다.
마감은 시간적으로 본다면 정해진 어떤 시간의 끝에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년의 마감은 십이월에 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한 해를 뒤돌아 보면서 한 해를 결산하는 일은 한 해를 마감하는 일이 될 것이다. 몇 일 남지 않은 일년을 마감하는 마음이 숙연하게 다가온다. 한 해를 보내면서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해마다 이맘 때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회한이라는 단어이다. 후회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금쪽같이 소중한 시간들을 어떻게 사용했나를 되돌아 본다. 시간의 가치에 걸맞게 사용하지 못한 때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알차게 사용할 수 있던 날을 무료하게 허송했다면 얼마나 큰 손실일까... 잘 사용한 날과 낭비한 날을 비교한다면 허송한 날, 시간이 더 많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회한속에는 작은 마감의 보람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아침부터 비가 쉬지 않고 내리고 있다. 우기에 접어드는 이곳 날씨라 이상할 것은 없다. 비가 내리지만 마음은 즐겁다. 지난해 까지만 해도 비가 내리면 마음에도 비가 내리곤 했었다. 왜냐하면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하고 있는 집의 낡은 지붕 곳곳에서 물이 새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벽은 흘러내린 빗 물로 얼룩지고 바닥은 물로 흠뻑 젖곤했었다. 손님이라도 찾아오게 되면 부끄러워 집 안으로 들어오게 할 수도 없었다. 새는 지붕을 고치기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섣불리 손을 대기도 겁이 났다. 전문 업체에 맡기려고 알아보니 이만불 정도는 잡아야 했다. 갑자기 그 큰 돈을 마련할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고심 끝에 직접 재료를 사서 고치기로 했다. 비가 오지 않는 건기인 여름이 가장 좋은 계절이다.
여름철 날씨는 가을과는 딴 판이다. 이곳의 칠 팔월의 날씨는 화창 그 자체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장마도 없는 계절이다. 여름 두 달 동안 지붕을 고치기로 했다. 그대로 두면 우기가 시작되는 가을부터 또 다시 방안과 부엌에는 물이 샐 것이다. 얼룩진 안방 벽에는 또 다시 얼룩이 지고 부엌 구석에는 물을 받는 양동이를 늘 받쳐두어야 할 것이다. 더운 날이지만 수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지붕으로 올라갔던 첫 날도 햇빛은 사정을 봐 주지 않았다. 구름은 멀리 떠났고 온 몸으로 그 열을 받아야만 했다. 슬레이트 지붕을 한 장 한 장 뜯어내었다. 지붕은 오래되어 많이 상해 있었다. 속 앓이 하듯이 특히 안쪽은 너덜 너덜했다. 건축재료상에 가서 사 온 판자로 교체했다. 받침대를 따라 정교하게 잘라 판자를 대고 단단하게 못질을 했다.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일의 진행은 느려 터졌다. 하지만 고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일은 네 주간이나 걸렸다. 물이 샌 곳을 일일이 점검하고 그 부분의 슬레이트를 걷어내고 판자를 교체했다. 다섯 시쯤 되면 몸은 흠뻑 젖었다. 마음은 지쳐 지붕위에라도 덜렁 눕고 싶었다. 하루를 마감하고 지붕에서 내려오는 그 시간은 가장 즐거웠다.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금방 잠에 빠져들곤 했다. 두 달이 금방 지났다. 물이 새던 지붕은 새 판자와 슬레이트로 모두 교체되었다.
공사가 끝내자 여름도 물러갔다. 가을과 함께 우기가 찾아오고 흐린 날씨가 자주왔다. 지난 해 까지만 해도 비가 오면 마음을 졸이곤 했지만 금년은 달랐다. 오히려 비가 기다려 졌다. 시월에 접어들자 제법 빗 방울도 굵어지고 어떤 날은 주룩 주룩 내리기도 했다. 그 때마다 천정을 자세하게 쳐다보기도 하고 벽을 손으로 만져보기도 했다. 습기라도 배어 나오나 염려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빗 물은 스며들지 않았다. 지붕 수리는 성공적이었다.
어느 날 한국에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이곳으로 일년간 방문학자로 오게 된 한 가족으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십이월에 유진에 도착하는 데 집을 찾을 동안 임시로 거처할 숙소를 찾는 다는 내용이었다. 바로 답신을 보냈다. “집이 소박하기는 하지만 편히 쉴 수 있는 곳입니다. 환영합니다. 온 가족이 오셔서 집을 구할 동안 편하게 지나세요. 사용은 무료입니다”
박 교수님은 예정대로 유진공항에 도착했고 게스트하우스로 무사히 입주했다. 12월 15일이었다. 그날따라 겨울비는 내리고 있었다. 빗 속의 게스트하우스는 포근했다. 작은 마감이었지만 보람은 그 보다 훨씬 커 보였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오리건 김성주의원 차남 미 공군사관학교 졸업
- “윤혜성 교장선생님 수고하셨습니다”
- 타코마한인회, KWA‘비지니스 활성화 그랜트신청’돕기로
- 시애틀 한인마켓 주말세일정보(6월 7일~ 6월 10, 6월 13일)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8일 토요산행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대한산악회 8일 토요산행
- 한국 스타트업 미국진출 위해 중진공·시애틀총영사관 협력
- 시애틀시 ‘6월4일 한국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의 날’로 지정
- 6월 정부납품 세미나 이번 주말 열린다
- 시애틀 한인, 워싱턴주 EOC 커미셔너로 활동
- “시애틀 한인 여러분, 유언장이나 상속 문제는 이렇게”
- 한인 꿈나무들 학예경연대회로 그림ㆍ글 실력 맘껏 발휘(+영상,화보)
- 페더럴웨이 통합한국학교도 장날행사로 여름방학들어가(+화보)
- 벨뷰통합한국학교 풍성하고 즐거운 종업식(+영상,화보)
- 시애틀통합한국학교 신나는 장날행사로 방학 들어가(+화보)
- U&T파이낸셜, 워싱턴주 한인여성부동산협회 세미나 성황
- 워싱턴주음악협회 올해 정기연주회 젊고 밝고 맑았다(+영상,화보)
- FWYSO 2만4,600여달러 장학기금 모았다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김철훈 목사 소고(小考-4)
- KORAFF 한인입양가족재단 한국문화축제 연다
- 타코마한국학교, 특별한 한국어 여름학교 캠프 연다
시애틀 뉴스
- 지구사진 찍은 워싱턴주 우주비행사, 소형 비행기 조종중 추락사(영상)
- 미국주택구매 희망자 71% “모기지 인하 기다린다”
- 시애틀서 트레이더 조스 인기 좋다-새 지점 개설한다
- 시애틀에 미국 최대규모 벽화 등장했다
- 워싱턴주 학생들 아직까지 FAFSA 결과 통보 못받아 전전긍긍
- 워싱턴주 오늘부터 범죄용의차량 추격 다시 가능해져
- 오늘, 내일 시애틀지역 바닷물 올해들어 가장 많이 빠진다
- 워싱턴 주민 "도살업자가 엉뚱하게 우리집 애완돼지 죽였다"
- 시애틀지역 평균 집값 100만 달러 돌파했다
- UW 순위 다소 밀렸지만 세계 명문대 맞다
- "시애틀지역에서 저렴한 탁아소 어디 없을까요"
- 시애틀 말썽꾸러기 ‘벨타운 헬캣’ 운전자에 거액벌금 요구
- 미국 항공사 요금반환법 제정엔 시애틀 고교 영향도 컸다
뉴스포커스
- 건설경기 침체 언제까지…철강·시멘트, 생산 줄여도 재고 급증 '끙끙'
- 서울 학교·유치원에서 생성형 AI로 수업한다…교육감 책임 명시
- "매도 체결돼야 범죄" 제동 걸린 불법 공매도 재판…고민 빠진 검찰
- "암매장 신생아·멍투성이 여고생" 아동학대, 살인과 학대치사 엇갈린 형량
- "인스타·유튜브 숏폼 견제"…네이버 사이트 검색 SNS 연동 종료
- 北 김여정 "南, 확성기 방송하면 쉴 새 없이 휴지 주워 담게 될 것"
- 치과의사 이수진, 스토킹 시달려 폐업…"다른 스토커 또 있다"
- 윤 대통령 승인한 '석유 시추' 무슨 돈으로? …거야 "의혹 투성이"
- "개XX 놀이 유행처럼 번져…교감 뺨때린 사건 학생들 심리치료 필요"
- "네가 뭔데 내 딸을"…밀양 가해자로부터 학폭 당했다 주장 나와
- "의협 무기한 총파업? 정부 태도에 달려 있다"
- ‘원구성 협상‘ 등 돌린 여야…민주 ‘일방통행’ 수순
- 박상우 "집값 추세적 상승 어렵다…종부세는 '징벌 과세' 폐지해야"
- "유튜브 올라온 '밀양' 피해자, 지적장애 있다…영상 삭제 안됐다"
- 박대출 "국민 1인당 25만원씩 나눠줄 돈으로 시추 130번"
- 韓 가계부채율, 기준연도 개편했지만…여전히 '세계 1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