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수필-박순자] 커피 플러스(Coffee Plus)

박순자 수필가(워싱턴주 기독문인협회 이사장)

 

커피 플러스(Coffee Plus)


가을로 접어드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 여름의 낭만적인 추억들이 가시기 전에, 이어진 생소한 모임인 커피 플러스가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뭔가 보람 있는 모임이 될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왜 이름이 커피 플러스일까? 하는 의구심은 떨칠 수 없었다. 허나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 않았던가!  

아침 열 시에 만나는 장소엔, 예쁜 장식의 먹거리들이 벌써 우리를 유혹하고 있었다. 우리 네들의 음식은 무조건 많은 양의 푸짐한 것이라면, 요즘의 그들은 빵 가게에서 주문한 듯한 솜씨로 눈요기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처음엔 내 나이가 걸맞지 않나 하는, 자기 연민에 빠지는 듯 괜히 주눅이 들었다. 낮선 얼굴들은 삼십 대부터 팔십 대까지 다양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라 저마다 각양 마스크로 얼굴 반을 가리고 있어 안면 기억이 쉽지 않았다. 게다가 무작위 제비로 매주 방 배정이 달랐다. 만나는 사람들이 매번 바뀌니, 함께 교제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겐  힘들었다.  

십 주 동안 선정된 책에서 정해진 분량의 글을 읽고 질문을 받아, 나름대로 정리하고, 섬김이를 중심으로 진지한 나눔이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색다른 나눔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갔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올해로 만 이 년이 되었다. 이 년이란 세월에 책 일곱권을 품에 안았고, 그동안 과제가 일상의 우선권이 된 것 같았다. 

책들 중 시 에스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순전한 기독교’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서로의 나눔 속에서 상대방의 주관적, 객관적인 사고의 세계에 접목되어 깨닫는 지식은, 나 자신의 깊은 내면을 관찰하는데 큰 도전의 시간이었다.  

끝나는 날은 개근상 등, 잔잔한 축하 시간도 있었다. 고운 상차림의 꽃향기를 맡으며 둥근 테이블에 앉아 독서의 뿌듯함에 동심 일체가 된 듯, 저마다 소감을 발표하며 즐거운 축제의 분위기를 자아냈다. 겨울 문턱을 넘어 잠깐 쉼을 갖고, 이른 봄에 다시 이어질 커피 플러스가 기다리므로 자리매김이 되었다. 

2023년엔 마스크를 벗는 자연스러운 만남이었다. 얼굴 반이 벗겨지니, 상대방을 잘 몰라 기억한 이름을 물으며 “맞나요?”인사하며 서로 웃는 해프닝도 있었고, 어느 정도 친분이 생겨 일상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지난 십일월에 끝난 ‘읽는다는 것’(강영안 저)을 읽고 우리가 그동안 책들을 어떻게 읽었는지 뒤돌아보는 절정의 나눔이 있었다. 읽는다는 것이 인격적인 실체와 실천이 담겨 있음에 큰 결단으로 마음 밭에 새기게 했다.    

딱딱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요리반도 끼어있어, 점심 애찬을 나누는 시간도 있었다.  아! 이름이 왜 커피 플러스일까 하는 처음의 갸우뚱이 저절로 풀리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제 2023년이 저물어 간다. 이 때쯤이면, 십이월 달력을 잡아매어 뜯고 싶지않다. 정말 날아가고 있는 세월이다. 그래도 한 가닥의 희망을 품는다. 새해에 다시 시작할 ‘커피 플러스’에서 나의 늘어진 삶을 바짝 긴장시키는 푯대가 앞에 놓여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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