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드파르디외 성폭행 혐의에 둘로 쪼개진 프랑스 여론

마크롱 이어 문화계도 옹호…"무죄추정의 원칙 지켜져야"

훈장박탈 절차에 제동 걸리자…여성계 "사회변화 역행" 규탄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프랑스 국민 배우 제라드 드파르디외(74)를 두고 프랑스 사회의 내부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 이어 문화계 인사들도 드파르디외를 옹호하자 그동안 미투(Me too·피해자들의 성폭력 고발) 운동을 전개해 온 여성계가 반발했다.

로이터 통신과 더 타임스에 따르면 프랑스 문화계 인사 50여명은 '드파르디외의 훈장을 취소하지 말라'는 제목의 공개서한을 25일(현지시간) 프랑스 보수 성향 일간지 르 피가로에 게재했다.

이들은 "그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적 린치와 그에 대한 증오의 급류 앞에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며 "영화의 거장이란 이유로 다른 용의자들과 달리 무죄 추정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드파르디외는 가장 위대한 배우"라면서 "이런 식으로 그를 공격하는 건 예술을 공격하는 것과 같다"고 덧붙였다.

서한에는 한때 드파르디외의 여자친구였던 배우 나탈리 베이와 캐롤 부케를 비롯해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부인이자 가수 출신인 칼라 브루니 등 저명한 프랑스 문화계 인사들이 이름을 올렸다. 드파르디외에 대한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그가 받은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박탈해선 안 된다는 게 이들의 요구사항이다.

지난해 3월 성폭행 혐의로 입건된 드파르디외는 이달 초 프랑스 공영방송이 방영한 다큐멘터리로 또 한번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다큐멘터리에는 2018년 드파르디외가 자신을 두차례 이상 강간했다며 소송을 제기한 배우 샬롯 아놀드(28·여)와 2007년 영화 '디스코' 촬영장에서 그가 자신을 더듬었다고 검찰에 고발한 코미디 배우 헬렌 다라스(42·여)의 인터뷰가 담겼다.

또한 드파르디외가 2018년 북한 여행 도중 현지 통역사에게 "여성들이 승마를 즐기는 건 성적 쾌감 때문이며 10대 소녀도 그렇다"고 발언한 녹취가 처음으로 폭로됐다. 미성년자마저 성적 대상화한 정황이 드러나자 리마 압둘 말라크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드파르디외가 국가를 수치스럽게 만들었다면서 1996년 정부가 수여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박탈하는 징계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은 20일 프랑스 공영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드파르디외에 대한 훈장을 재검토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엄청난 배우이자 천재적인 예술가"라며 "말라크 장관이 너무 앞서나갔다. 피해자가 있을 수 있지만 동시에 무죄 추정의 원칙도 존재한다"고 두둔했다. 줄곧 자신의 혐의를 모두 부인해 온 르파르디외는 문화계의 공개서한에 대해 "매우 용기 있는 사람들"이라고 추켜세웠다.

마크롱 대통령이 드파르디외의 훈장 박탈에 제동을 건 데 이어 문화계까지 이에 동조하자 프랑스 여성 단체들은 성폭력 공론화에 역행하는 행위라며 규탄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시민단체 '미투 미디어'의 대표 에마뉘엘 당쿠르는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아직도 사회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가 있다"면서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말했다.

드파르디외에 대한 추가 폭로도 이어졌다. AFP 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배우 소피 마르소(57·여)는 28일 게재된 주간지 파리 매치와의 인터뷰에서 1985년 드파르디외와 함께 영화 '폴리스'를 촬영할 당시 무례하고 부적절한 태도를 보였다면서 당시엔 스타 배우가 아닌 세트장 내 낮은 직급의 여성을 표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드파르디외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치열해지자 2018년 프랑스 문화계 여성 100명이 발표한 공개서한도 재조명되는 분위기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배우 카트린 드뇌브를 필두로 프랑스 일간 르 몽드에 게재한 서한에서 이들은 당시 전세계를 휩쓸던 미투 운동이 성엄숙주의를 표방한 청교도주의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면서 "성적 자유를 위해선 남성들의 추파를 묵인해야 한다"고 주장해 파장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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