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니어 산할머니‘ 98세로 별세

77세 최연로 여성정복자 명예ⵈ한해 여름 캠프 뮈어 50번 등반

선드스트롬, 나치 아우슈비츠 지옥에서 살아남은 뒤 미국으로 이민


나치의 아우슈비츠 지옥에서 살아나온 뒤 미국으로 이민, 레이니어 산의 방문객센터가 있는 ‘천당’(파라다이스) 주변 등산로를 수십년간 오르내려 산악계의 명사가 된 브론카 선드스트롬 할머니가 29일 충혈성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향년 98세.

선드스트롬은 77세였던 2002년 레이니어 정상을 정복한 최연로 여성이 됐다. 그것도 캠프 뮈어 베이스에서 남들처럼 1~2박하며 쉬지 않고 19시간 안에 당일치기로 해치웠다(그녀의 최연로 여성기록은 올여름 나흘 걸려 정상을 밟은 그녀의 78세 동료 로즈 밴더후프에 의해 깨졌다).

브론카 할머니는 남편 에이크 선드스트롬(2010년 작고)과 함께 수시로 캠프 뮈어(해발 10,188피트)를 올랐다. 한해에 50번 오른 적도 있다. 불과 한달 전까지도 셰할리스 웨스턴 트레일(5마일)을 동료들과 매일 등반했다. 동료들은 90대 할머니가 그처럼 열심히 산을 오른 것은 건강상 이유보다 마음 깊숙이 박힌 홀로코스트의 트라우마를 털어내기 위해서였던 것 같았다고 말했다.

폴랜드의 산도미어즈에서 정통 유대교 집안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브론카는 13살 때 폴란드를 침공한 나치에 온 가족이 붙잡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감금됐다. 그곳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부모와 6남매가 다른 100만여명의 유대인들과 함께 독살 당했다. 그녀는 아버지가 가스실로 들어가면서 히브리 기도문인 ‘셰마’를 찬송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그 후 20살 때였던 1945년 독일 내 버겐-벨센 수용소로 옮겨진 브론카는 그 해 영국군이 수용소를 점거하고 수감자들을 풀어줬을 때 체중이 50파운드까지 떨어져 실신한 상태였다고 회고했다.

그녀는 적십자사에 의해 다른 1만여명의 생존자들과 함께 스웨덴 난민수용소로 이송됐고, 그곳에서 위문 방문객들 중 하나였던 에이크를 만났다. 당시 약혼상태였던 에이크는 파혼하고 브론카에게 청혼, 이들은 1947년 결혼했다. 브론카는 다시 유럽에 냉전기운이 번지자 2년 후 남편을 졸라 그의 친지가 살고 있는 타코마로 이민 왔다. 

아웃도어맨인 에이크가 1980년 건축회사에서 은퇴하자 부부는 레이니어 산 입구의 애쉬포드 마을에 스캔디나비아 식 캐빈을 짓고 이주했다. 이들 부부는 사시사철 레이니어 산의 파라다이스 일대를 헤집으며 하이킹, 스키, 스노슈잉을 즐겼다. 남편과 사별한 후에도 브론카 할머니가 여전히 산에서 살다시피 하자 ‘아웃도어 리서치’사는 2015년 그녀의 이야기를 담은 ‘산의 여인(Lady Of Mountain)’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브론카 할머니는 79세였던 2004년 레이니어 산 정상에 또 한 차례 도전했다가 다른 등산객들이 크레바스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해 곧바로 하산했다. 그녀는 91세였던 2016년 캠프 뮈어에 마지막으로 올랐고, 2021년엔 타코마-피어스 카운티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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