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P "키신저 사망으로 미중 데탕트 시대 마감"

미중 긴장 풀 수 있는 유일한 존재 사라져

 

‘죽의 장막’에 갇혀 있던 중국을 세계로 끌어내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연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사망하자 미중 데탕트 시대가 막을 내렸다고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일 보도했다.

SCMP는 키신저가 사망함에 따라 그 같이 역량 있고, 미중간 이견을 해소할 수 있는 중재자가 사라져 미중 데탕트 시대가 사실상 막을 내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실제 키신저는 지금부터 50년도 전인 1971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저우언라이 총리와 미중 데탕트에 합의하고, 중국을 세계 무대로 끌어냈다.

1971년 만찬을 하고 있는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 바이두 갈무리
1971년 만찬을 하고 있는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 바이두 갈무리


그의 중국 방문은 1972년 닉슨 대통령과 마오쩌둥 주석과의 정상회담으로 이어졌다. 이후 양국은 1979년 정식으로 국교를 수교하고, 미중 데탕트 시대를 공식 개막했다.

수교 이후 미국은 중국에 대규모 투자를 해 중국의 빠른 경제 성장을 이끌었고, 중국은 미국에 값싼 상품을 대량 공급해 미국은 저물가에 초장기 호황을 구가할 수 있었다.

미중 데탕트는 미중 모두에게 윈윈이었던 것이다.

그랬던 미중 관계가 중국이 너무 빨리 부상하자 트럼프 정부 때부터 미국이 이에 제동을 걸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고,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대중 기술 수출 제재 등 대규모 제재를 감행함에 따라 미중관계는 파탄 일보직전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키신저가 사망해 미중 가교 역할을 할 존재가 사라졌다. 이는 미중 모두에 큰 손실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키신저의 마지막 공식 활동이 중국 방문이었다. 숨지기 불과 4개월전인 7월 20일 그는 베이징을 방문, 시진핑 주석은 물론, 왕이 외교 담당 국무위원, 리상푸 당시 중국 국방부장(장관) 등 중국 최고위 관료들을 두루 만나 양국간 긴장 완화를 모색했다. 

 

당시 미국은 미중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키신저를 특사로 파견했었다.

시 주석은 비슷한 시기에 중국을 방문한 기후 특사 존 케리와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을 만나지 않았지만 키신저는 국빈 초대소인 댜오위타이에서 직접 만났다.

당시 시 주석은 그를 "라오펑요우"(老朋友·오랜 친구)라고 부른 뒤 "중미 관계를 올바른 궤도로 되돌리기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중국은 신뢰하는 외국 고위급 인사를 지칭할 때 ‘라오펑유우’라는 표현을 쓴다.

중국 권부의 신임을 한몸에 받고 있는 키신저가 사망함에 따라 미중 양국의 긴장이 더욱 고조됐을 때 이를 조정할 수 있는 존재가 사라졌으며, 이에 따라 미중 데탕트 시대도 사실상 마감됐다고 SCMP는 평가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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