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외교전설 키신저, 향년 100세로 별세…냉전 질서 설계
- 23-11-30
1923년 독일 출생…미국 이민 및 귀화 후 미군으로 2차대전 참전
캄보디아 비밀폭격, 중남미 군부 지원 등 평가 엇갈려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의 데탕트를 이끌어낸 전설적인 외교관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29일(현지시간) 타계했다. 향년 100세.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키신저 전 장관이 설립한 외교 컨설팅사 키신저어소시에이츠는 그가 이날 코네티컷주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
장례는 비공개로 치러질 예정이며 이후 뉴욕에서 추모식이 열릴 예정이라고 키신저어소시에이츠 측은 밝혔다. 사망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은퇴 연령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키신저 전 장관은 국제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며 비공식 외교에 관여했다. 일례로 지난 7월 베이징을 깜짝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악수를 나눴다. 또 우크라이나 침공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대화를 위해 직접 러시아로 갈 수도 있다며 의욕을 드러내기도 했다.
◇2차대전부터 데탕트까지…100년 동안 살아 숨쉰 현대사
그는 1960년 정계에 입문해 1960년과 1964년, 1968년 대권에 도전한 넬슨 록펠러 뉴욕주지사의 외교 부문 참모로 일했다. 록펠러가 1968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쟁에서 패배한 뒤 리처드 닉스 캠프에 합류했다. 닉슨이 대통령에 오르자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냈다.
이후, 리처드 닉슨(1973-1974)과 제럴드 포드(1974-1977) 전 미 대통령 정부 시절 국무장관을 지내며 1970년대 동서 진영 간 데탕트를 설계했다.
그는 미국의 베트남전 철수, 중국과의 수교 및 개방, 소련과의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체결 등 미-소련 긴장 완화,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 간의 관계 확대 등 1970년대의 굵직한 국제 사건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베트남전 평화 협상을 체결하기 위해 북베트남을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는 데 성공한 공로로 1973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중국을 두 차례 비밀리에 방문해 저우언라이과 만나 닉슨과 마오쩌둥 사이의 1972년 정상 회담을 성사시켰고, 지속적인 '핑퐁 외교'를 통해 1979년 미중 수교를 이끌어냈다.
키신저는 또 미국과 소련 간 해빙 무드를 갖는 데에도 크게 기여했다. 그는 1983년 인터뷰에서 중국과 접촉을 하자마자 당시 소련과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1974년 3월2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전후 하버드대에 입학한 그는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1952년에 석사, 1954년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17년간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고인은 명시적인 이데올로기 개념이나 도덕적·윤리적 전제보다는 주어진 상황과 요인을 주로 고려하는 '현실정치'(Realpolitik)의 주창자였다. "정의와 무질서, 정의롭지 못한 것과 질서 중 하나를 꼭 골라야 한다면 항상 후자를 선택한다"라는 독일 시인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발언을 인용해 '힘의 균형'을 강조하는 현실주의 외교를 펼쳤다.
키신저 전 장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있다. 1973년 김 전 대통령의 일본 도쿄 납치 사건 당시 키신저는 김 전 대통령을 구명하기 위해 나선 이력이 있다.
1973년 10월13일 미국 워싱턴DC의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의 모습. (왼쪽부터) 헨리 키신저 미국 전 국무장관, 리처드 닉슨 미국 전 대통령, 제럴드 포드 당시 부통령 지명자, 알렉산더 헤이그 비서실장. 1973.10.13 |
◇명과 암 뚜렷하게 엇갈리는 키신저의 일생
이렇듯 키신저 전 장관은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지만 평가는 엇갈린다.
미국이 선전포고도 없이 캄보디아를 비밀리에 공습하고, 남미 칠레의 피노체트 군부 정권을 지원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파키스탄 군대가 동파키스탄(지금의 방글라데시)에서 대량 학살 전쟁을 벌일 때 이를 묵인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고인이 나치의 핍박을 피해 조국에서 쫓기듯 이민한 장본인인데도 약소국 권위주의 정부들의 인권 침해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동맹국들이 자국민을 대하는 방식보다 그 나라들이 반공 진영에 머물도록 하는 게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임기 말 키신저 전 장관이 세계에 남긴 것들을 복구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고 밝히기도 했다.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이 별세했다. 향년 100세.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키신저 전 장관의 외교 컨설팅사인 키신저 어소시에이츠는 2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키신저 전 장관이 미국 코네티컷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발표했다.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사진은 2014년8월28일(현지시간) 미국 자택에서 정몽주 전 의원과 북핵 등 한반도 문제와 동북아 평화 등에 환담을 가진 후 기념촬영하는 모습. 2023.11.30/뉴스1 |
그는 2015년 디애틀랜틱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때 유럽보다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더 많은 포격을 가했다"며 "그러나 결국 닉슨은 철수했고 키신저는 파리로 갔으며 우리가 (그곳에) 남긴 건 혼란과 학살,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마침내 지옥에서 나타난 권위주의 정부였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아직도 이 지역에서 어린아이들이 지뢰 때문에 다리를 잃고 있다면서 "피해 국가들의 폭탄 제거를 돕고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고인은 외교 컨설팅사 키신저어소시에이츠를 설립해 지정학적 분석을 원하는 고객 기업들에게 천문학적인 자문료를 부과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키신저어소시에이츠에서 이사로 일했던 데이비드 로스코프는 "헨리는 확실히 미국 역사상 가장 복잡한 인물 중 하나"라며 "탁월한 능력, 동시에 명백한 결점으로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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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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