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정동순] 오, 크리스마스 트리
- 23-11-27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장)
오, 크리스마스 트리
아들이 벗어 놓은 옷이 흙범벅이다. 오후 4시간 동안 12그루의 크리스마스트리를 팔았다고 한다. 손님이 고른 나무를 운반하기 좋게 그물망으로 단단하게 묶어 자동차에 실어주는 일까지 하니 옷에 흙이며 송진이 잔뜩 묻어온다.
보이스카웃 트룹 636에서는 해마다 기금모금 행사로 크리스마스 트리 세일을 한다. 추수감사절 다음날부터 3주간의 봉사 시간표를 짠다. 평일 저녁 4시간과 주말에 봉사하는데 대개 2주 반을 넘기지 않고 매진된다. 예전에는 수표나 현금을 받았지만, 요즘은 스퀘어라는 앱으로 카드만 받는다. 아들은 추수감사절 다음날 당번을 자청한다.
크리스마스트리 세일은 벌써 4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 세일은 나무 농장에 원추형 모양의 7-12년쯤 자란 품질이 좋은 나무를 주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비가 많이 오는 겨울에는 쓰지 않는 동네 테니스 코트를 빌려 나무를 전시하고 판매할 준비를 한다. 가격은 일반 가게에서 파는 것보다 50퍼센트 정도 비싼 데도 해마다 고정 고객들이 온다. 초창기의 스카우트 소년이 이제 중년이 되어 나무를 사러 오기도 하고, 그 자녀들과 함께 스카우트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아들과 남편은 감사절 다음날 첫 조로 봉사를 마치고 나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사 온다. 거실이 좁은 우리 집은 향기가 좋고 잎이 잘 떨어지지 않는 5~6피트짜리 노블 퍼를 선호한다. 나무가 거실에 자리를 잡는 날은 집안에 좋은 숲의 향기가 퍼진다. 남편은 나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잘 골랐다고 자화자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거실을 지나면 짙은 나무향이 난다. 향기를 더 맡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쉰다.
나는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관하는 큰 상자를 꺼내 온다. 먼저 트리에 꼬마전구들이 달린 전선을 감고 나무 끝에는 큰 별을 단다. 잘 포장하여 상자에 넣어둔 트리 장식물을 조심스럽게 꺼낸다. 아이들이 유아원 때부터 하나씩 만들어 온 귀여운 장식물부터 해마다 한두 가지 보태거나 선물 받은 장식물이 조화롭다.
멀리서 사는 시누이는 해마다 한 가지씩 특별한 장식물을 보내 준다. 낚시에 재미를 붙였던 해에는 연어가 낚싯줄에 달린 장식물, 닭을 키우기 시작한 해에는 귀여운 닭 장식물 등이다. 올해는 특별한 것은 없지만 공대생 아들이 3D 프린터를 사서 처음으로 만든 작은 배 모형을 추가했다. 미국 생활 스무 몇 해. 이제 트리에 해마다 더 해진 사연들이 꼬마등과 함께 반짝인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새해가 오기 직전까지 매일 저녁, 반짝이는 꼬마등의 불빛과 함께 소박한 평온함을 안겨준다.
12월이 시작되면 여기저기서 카드가 오고, 친척에게서 선물이 도착한다. 선물은 크리스마스트리 아래에 놓아두고, 성탄절이 되어야 열어볼 수 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 기다림에 지쳐 선물 상자를 흔들어 보기도 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까지 날짜를 세는 달력을 선물로 주었다. 하루에 한 칸씩 열면, 좋은 그림이나 작은 초콜릿 등이 나왔다.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아이들이 잠들길 기다린다. 산타는 선물을 트리 아래 가져다 놓고, 벽에 걸린 가족의 이름이 새겨진 양말에 작은 선물을 넣어준다. 성탄절 아침을 먹고 온 가족이 모여 트리 앞에서 사진을 찍고 선물을 열어 본다. 아이들에게는 자기 생일 못지않게 좋은 날이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는 구원을 믿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이웃과 가족 간의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연말에 모두에게 휴식의 시간을 주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선물을 고르게 한다. 해가 가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게 하고 자주 연락하지 못하는 사람들과도 카드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전하게 되니 참으로 감사하다.
올해도 거실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섰다. 트리 장식을 보며 추억을 하나씩 소환한다. 한 해가 저물어 갈 때, 크리스마스트리 하나 들여놓고 감사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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