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생가가 경찰서로…시민사회 "역사적 교훈으로 남겨둬야" 반발

오스트리아 정부 "박물관은 극우 세력 결집할 수 있어 반대"

시민사회 "오스트리아의 나치 부역 과거사 지우는 작업"


"평화와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다시는 파시즘이 없기를, 수백만의 죽음이 경고한다"

독일과의 국경에 위치한 오스트리아 오버외스터라이히주(州)의 작은 마을인 브라우나우암인의 한 저택 앞 비석에 이러한 문구가 적혀있다. 평범해 보이지만 이곳은 제2차 대전을 일으킨 전범 아돌프 히틀러가 태어난 곳이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히틀러의 생가를 경찰서로 리모델링(구조 변경)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역사적 교훈을 위해서라도 건물을 박물관 등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고 뉴욕타임스가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실 브라우나우암인의 주민들은 수년 동안 관광객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거나 네오나치가 히틀러의 생일에 촛불이나 화환을 들고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건물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러나 지난 2017년 오스트리아 정부는 히틀러 생가의 상징성과 악용 가능성을 우려하면서 결국 건물을 경찰서로 개조하겠다고 발표했다. 극우주의자들의 결집을 막고 과거사를 청산한다는 이유에서다.

본격적인 공사는 10월 시작됐다. 그러나 히틀러 생가가 경찰서로 바뀌는 데 대해 반대하는 시민 사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역사 교사인 아네트 포머(32)는 이 공간이 나치 정권에서 오스트리아의 역할을 탐구하는 박물관이나 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히틀러가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여야 한다"며 "악의 집이 아니다. 그저 아이가 태어난 집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아이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설명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아돌프 히틀러 생가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두고 정부 관련 위원회는 "오스트리아가 이 장소의 역사를 부정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며 철거해선 안 된다고 권고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이 건물이 히틀러와 계속 연관될 것이라며 박물관으로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결론 내렸다.

결국 정부는 이 건물에 지역 경찰 지휘부를 포함한 경찰서를 설치하기로 했다. 건물 뒤쪽에는 인권 교육 사무실이, 앞쪽에는 재건축된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며, 2000만유로를 들여 2026년까지 경찰이 입주할 수 있도록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은퇴한 교사이자 향토 역사가인 플로리안 코탄코는 장애인을 박해한 히틀러의 행적을 고려했을 때 많은 이들이 생가를 장애인 단체를 위한 공간으로 바꾸길 원했다고 말한다.

그는 오히려 경찰서로 변경하는 것이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즉 히틀러의 지지자들이 난동을 피우고 이곳에 체포되는 것을 일종의 '영광'으로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히틀러의 생가임을 보여주는 비석은 어떻게 할 것인지도 관심거리였다. 이 비석은 1989년에 마우타우젠 강제 수용소의 부지에서 가져온 돌이다. 그러나 결국 비석만큼은 그대로 남아있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석만 남겨두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브라우나우암인에서 자란 전직 언론인 에블린 돌(56)은 2차대전이 끝난 후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인들이 자신들 또한 나치 독일의 희생자라는 인식이 강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역시도 나치 독일에 부역했다는 불편한 역사적 사실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었다. 그는 히틀러 생가가 역사적 진실을 마주하고 관용의 메시지를 나타낼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스트리아의 영화제작자 귄터 슈바이거는 나치를 강제수용소 같은 공간을 통해서만 기억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히틀러 생가의 문을 닫고 외관을 바꾸는 것은 진실에 대한 억압의 정치를 계속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작고 평범한 도시의 평범한 장소를 상징하는 이 집은 나치가 외부나 '다른 행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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