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공순해] 치과행
- 23-10-02
공순해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치과행
치과에 처음 가 본 건 24살 때다. 교통사고로 이가 부서져 도리가 없었다. 그 경험은 이쑤시개 꽂히듯 기억에 콱 박혔다. 의사의 손에서 나던 담배 냄새 때문이었다. 이를 갈아냈기에 뼈 타는 냄새와 니코틴 냄새가 섞여 입속에 시체가 쌓이는 것만 같았다. 지옥(?)에서 겨우 빠져나온 뒤 다신 치과에 안 가리라 작심했다.
아무리 작심해도 피할 수 없는 곳이 병원이다. 산부인과에서도 절대 다시 오지 않으리라 이 악물었지만 이곳도 피할 수 없는 곳. 본능적으로 변한 짐승이 곧바로 모성으로 변모하는 신기한 장소가 그곳이었다. 불가사의한 경험이었다. 모성을 성스럽다 예술로 승화하는 작가도 있다.
웬만해선 병원엘 가지 않는다. 되도록 식품의 회복력에 의지한다. 고통스러운 나머지 병원엘 가면 의사의 진단은 번번이 별 이상 없다, 스트레스 탓이다, 오렌지 주스 많이 마시고 쉬며 지켜 보자가 전부다. 이런 진단은 나도 한다. 진료비만 날린 셈. 내 증상은 내가 젤 잘 안다. 혈압과 혈당도 식품으로 극복했다.
하지만 그것도 신체가 치유와 회복의 탄력성을 가지고 있을 때까지였다. 생의 반환점을 돌자 친구처럼 질병이 줄 서 찾아왔다. 첫 친구는 눈에서 왔다. 55세 이래 안과 정기 검진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시력 저하의 주범인 안구건조증은 의사의 도움도 많이 받았으나 자신에게 맞는 치료법은 결국 자신이 찾아냈다. 녹내장 백내장은 의술의 힘을 빌었다.
주변의 백내장 수술 경험자들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잠깐 사이 수술이 끝나고 경과도 좋다고.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실제로 해 본 바에 의하면 그것도 수술은 수술이었다. 우선 수술대에 오르기 전 마취도 했다. 마취란 잠시 세상을 떠난 상태 아닌가. 게다 미국 의료진들은 왜 그리 주사 놓기에 서툰지. 부풀어 올라 눈에 뻔히 보이는 정맥을 찌르고 또 찌르고, 혈관이 터지고야 겨우 바늘을 꽂았다. 멍 자국이 3주를 갔다.
시술 전에 선택할 사안도 있었다. 컴퓨터 거리 시력, 원거리 시력, 근거리 시력,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어느 게 좋은지 몰라, 안경이라도 벗자 싶어 일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컴퓨터 거리 시력을 골랐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원거리 시력을 가장 많이 선택한단다. 후회했으나 시술은 끝난 뒤. 또 어려움은 수술 결과가 안정될 때까지 안대를 해야 했고, 세수조차 맘 놓고 할 수 없었다. 물론 머리 감기도 안 됐다. 의사가 허락한 뒤에야 겨우 일상으로 돌아왔다. 적어도 열흘쯤은 일상이 멈추는 게 백내장 수술이었다. 그리고 빛이 반사되는 어디에서나 선글라스를 써야 했다. 컴퓨터 앞에선 블루 라이트 차단 안경을 착용해야 했다. 이래저래 안경은 필수였던 걸. 무지하게 아무것도 몰라서 졸지 간에 당한 기분이 들었다. 이래서 경험자들에게 후일담을 꼼꼼하게 들어둬야 하는 거구나, 깨달았지만 다 지나간 일. 이게 그 쉽다는 백내장 수술인가. 어느 수술이건 쉬운 건 없다.
다 지나간 일은 치과에서도 있었다. 60세 생일 전 주, 땅콩 먹다 어금니가 나갔다. 그 무렵 치열이 변해 우울하던 차였기에 의사에게 말했더니 여성의 노년엔 다 그렇다고 웃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 의사는 그럼 사전 대비할 수도 있지 않을까. 40대로 보이는 그 여의사가 좀 얄미웠다.
근래 도넛을 먹다 아랫니가 솟구쳤다. 이러다간 죽 먹다가도 이가 망가지겠네. 한숨과 함께 다시 치과행을 감행해야 했다. 의사는 임플란트를 권했다. 시술에 넉 달이 걸렸다. 그 넉 달 동안 윗니들이 빈 공간 안에서 저희 맘대로 놀아났다. 건치 미인이란 말도 있건만, 이건 치아 추녀가 아닌가. 더욱 망가진 치열에 다시 한숨을 쉬었더니 며느리 하는 말이 요즘은 그걸 예방하기 위해 치열을 고정하는 장치를 하기도 한단다. 뭐? 그럼 의사들이 그걸 말해줬어야지. 튀어나오는 말을 겨우 참았다. 의사의 직무 유기였다.
남 탓하면 뭐 하랴. 죽어라 병원을 피한 내 탓 해야지. 20대에 만났던 치과 의사가 니코틴 냄새만 그리 풍기지 않았어도 그토록 기피하진 않았을 터인데… 요즘엔 기술이 발달해 치과 치료도 전 같지 않다. 이를 갈아내도 입안에 적어도 시체 쌓이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날로 현대화해 가는 세상 속에 홀로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 시대로 돌아간 기분, 왕따당한 이 기분. 비행기라며 익룡의 날개를 붙잡고 날아가던 만화는 재미나 있지. 원시인이 된 듯한 이 쓸쓸함을 어쩌랴. 이승윤의 <코미디여, 오소서>나 들어야 할까. 그는 삶은 코미디, 가끔은 하모니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오늘도 책을 펴 놓고 읽는다. “그러니 좋은 날이 다 지나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구나, 탄식이 나오기 전 아직 성할 때 너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라.”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린우드 베다니교회 이번 금~토 파킹장 세일
- 한국 GS그룹 사장단 시애틀서 집결… MS·아마존 찾아 공부했다
- 올해도 시애틀서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 열린다
- 유니뱅크 올해 흑자로 바로 전환, 정상화됐다
- ‘가마솥 진국’레드몬드 ‘본 설렁탕’5월 특별할인해준다
- 워싱턴주 음악협회, 44회 정기연주회 연다…“예약 서둘러야”
- [서북미 좋은 시-윤석호] 떨고 있을 때
- "한인 여러분, 구글 비지니스로 가게 홍보하세요"
- 오리건출신 한인 2세 미 해군항공학교 수석졸업
- [부고] 故김철수장로 부인 김영숙 권사 별세
- 타코마서미사,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요식 거행한다
- 시애틀 김명주,박희옥 작가 시조신인문학상 수상
- KWA평생교육원, 신규개설 '스마트폰 클래스' 인기 최고(영상)
- [하이킹 정보] 시애틀산우회 27일 토요정기산행
- 시애틀지역 인기 한식당‘스톤’(Stone) 레드몬드본점 이전 신장개업했다
- 한인생활상담소 입주할 건물 공사시작됐다
- 미국서 국내선 3시간, 국제선 6시간 지연되면 자동 환불
- 한국 연예인 홍진경, 이번 주 김치홍보차 시애틀 H-마트온다
- [부고] 강화남 전 워싱턴주 밴쿠버한인회장 별세
- 한국, 40세부터 복수국적 허용 추진
- 한국학교 서북미협의회 개최 학력어휘경시대회서 5명 만점 받아
시애틀 뉴스
- 워싱턴주, 과거 한인 포함 인종차별 주택구입제도 손본다
- 시애틀지역 본사있는 REI, 2년 연속 적자에 시달려
- 보잉 정말로 걱정된다, 채권시장서 100억달러 조달 모색
- 시애틀 연방법원, 돈세탁 등 혐의' 바이낸스 창업자 징역 4개월 실형
- UW캠퍼스에서도 친팔레스타인 시위 시작됐다
- 워싱턴주 20대 여성 "한국 인기라면 불닭볶음면 먹고 응급실로"주장
- 워싱턴주, 간호사에게 미국서 최고로 좋은 주다
- 워싱턴주 해변 2곳 미국 최고해변 25에 포함됐다
- 미국 주택보험료 23% 폭등했지만 그나마 워싱턴주 최저수준
- I-90 대로서 얼룩말 탈출 소동
- 워싱턴주 ‘워킹맘’들에게 좋은 곳이다
- 벨뷰도 이젠 안전지대 아니다...할머니 BMW차량 10대들에 빼앗겨
- 시애틀 동물원, 암 걸린 하마 안락사시킨다
뉴스포커스
- '채상병 특검법' 尹 거부권 시험대…김 의장 손에 달렸다
- 민희진, 단독으로 뉴진스 계약 해지할 권한 요구…"불합리한 간섭 때문"
- 직장인 10명 중 5명 "육아휴직·근로단축 제도 사용 '언감생심'"
- 韓아이들 평균키 3~7㎝ 늘었다…男15세, 女14세 되면 '다 컸다'
- 혈세로 뱅크런 막았더니…새마을금고 '5천억 배당잔치'
- 민원인 욕설전화땐 바로 끊는다…공무원 이름 비공개 '신상털기 차단'
- 정부 "의료계와 1:1 협의체 논의도 가능…전공의 돌아와 달라"
- 여야, 채상병 특검법 합의 불발…민주, 강행 처리 예고
- '범죄도시4', 개봉 7일 만에 500만 돌파…거침없는 흥행 [Nbox]
- 박지원, 김진표 향해 "개XX" 욕설…"진심으로 사과"
- 여야 하나씩 양보한 이태원특별법…채상병특검은 '막판 줄다리기'
- 지역인재 선발 1071명→2238명…현 고2, 지방의대 입학길 넓어진다
- 초등학생도 저소득층 장학금…국민연금 '일부' 조기수령
- 저걸 왜 사냐'던 기안84 '46억' 건물…5년만에 '62억' 됐다
- 야구 국가대표 출신 오재원, 첫 재판서 마약 투약 혐의 인정
- 부산은 왜 아직 '조폭의 도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