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문해성] 삼각관계
- 23-08-07
문해성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삼각관계
조심스럽게 이불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그러자 바로 어둠 속에서 물체 하나가 움직이더니 내 몸에 찰싹 붙인다. 잠이 든 줄 알았는데 침대에서 계속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더 가까이 밀착해 오면서 나를 살살 흔든다. 안아달라는 신호다. 가만히 손을 그 가슴에 얹었다. 콩당콩당, 사랑의 박동 소리가 참 따뜻하다.
“다정한 커풀 잘 잤나요?”
코코와 거실로 내려오는 것을 보며 남편이 건넨 아침 인사다. 둘이 몸을 딱 붙이고 자는 모습이 세상 다정한 연인이라고. 남편 기분을 생각해서 나는 녀석을 번쩍 안아 그에게 키스를 시킨다. 녀석은 눈치도 없이 소파에 앉자마자 내 무릎 위에 앉기를 고집한다. 엄마 커피 마시게 이리 와, 하며 남편이 잡아당긴다. 그럴수록 코코는 내 옆에 더 붙는다. 못 말리는 사랑꾼이다.
이쯤 되면 남편은 서운함을 넘어 질투심까지 생기는 것 같다. 코코가 원래 자기 자리를 다 빼앗았다고 투정을 부린다. 남편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강아지에게 질투하다니. 사람이 나이가 들면 어린아이가 되어간다고 하던데 남편이 딱 그렇다.
코코도 안다. 집에서 자신이 사랑을 독차지하는 막내라는 것을. 녀석에게 귀여움은 가장 큰 무기다. 보고 있으면 너무 사랑스러워 뭐든 해주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하랴. 주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려도 가끔 내 눈을 피해 남편이 슬쩍 우리가 먹는 음식을 준다는 걸 안다. 애원하는 눈빛을 보고 있으면 거절할 수 없었다고. 그런데 예민한 장 탓에 다음날 어김없이 꾸르륵 꾸르륵 요동치는 소리가 숨길 수 없는 증거다. 속상한 마음에 애꿎은 남편에게 큰소리를 치지만 사실은 나도 공범이다.
어디를 가든 코코는 내 껌딱지다. 이런 코코의 마음을 얻으려고 남편은 여러 가지 구애 작전을 써보지만, 녀석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내가 혼자 외출이라도 하게 되면 기회를 놓칠세라 코코가 좋아하는 일들을 벌인다. 간식을 싸 들고 커피숍에도 가고 드라이브도 한다. 공원에 가서는 코코가 제일 좋아하는 공놀이도 하고 산책할 계획까지. 그런데 그 좋아하는 공놀이에도 관심은커녕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단다. 오직 나한테 가고 싶다는 눈빛만 보내고 있는 모습에 짝사랑의 서운함을 느꼈을 남편.
“그래, 십 년간 매일 당신과 함께 있었으니 당연하지.”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남편의 체념 같은 말이다.
“그러면 당신은 십 년간의 사랑이 갑자기 변했으면 좋겠어? 코코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 알잖아.” 남편이 서운해하지 않았으면 해서 하는 말이었지만 살짝 미안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 땅에 와서 만난 코코는 특별했다. 남편이 퇴근할 때까지 유일하게 같이 시간을 보내고 말을 걸 수 있는 대상이었다. 외로운 나의 친구가 되어주고 영어 실습 파트너가 되어주기도 했다. 언제나 열심히 들어 주고 반응해 주었다. 그래서 지금도 세상에서 내 영어를 제일 잘 알아듣는 것은 코코라고 생각한다.
올해 들어서 나이 탓인지 코코가 빨리 잠자리에 드는 날이 많아졌다. 전에는 아무리 늦은 시간이라도 내가 침대에 갈 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일정한 시간이 되면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일어선다. 남편이 코코를 독점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것도 내가 침대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야기다. 코코가 내 쪽으로 돌아눕는데 채 1초가 걸리지 않는다고. 남편의 응석 섞인 말이다. 누가 그 사랑을 말릴 수 있으랴.
코코를 키우기 전에는 강아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집안에 동물을 키운다는 게 귀찮은 일이라 생각해서 관심도 두지 않았다. 주위에서 강아지나 고양이 등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도 건성으로 들었다. 강아지 호텔, 강아지 스파, 강아지 레스토랑 같은 광고를 보면서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코코의 부모가 되고부터는 많은 게 변했다. 지나가는 강아지를 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눈을 맞추고 이름이라도 불러주고 싶어진다. 코코와 함께 살면서부터 예전에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것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녀석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면 풀 한 포기, 바람 한 점이 소중하고 고맙게 다가온다.
더불어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지 싶다. 세상에는 크고 강한 것만이 존재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는 의미가 있다. 강아지는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한다. 그래서 온몸으로 표현한다. 오늘도 코코는 내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눈으로 표정을 읽으며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기울이면서 내 말을 이해하려 노력한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눈에서도 사랑의 스파크가 별처럼 반짝인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양심과 구원(1)
- 서은지총영사, 코리아나이트 시구 외교부 유튜브채널로 제작돼(+영상)
- 시애틀한인회,유급병가 세미나 개최한다
- [하이킹 정보] 시애틀산우회15일 합동산행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15일 산행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대한산악회 15일 토요산행
- 삼성 이재용, 시애틀서 아마존 CEO만나
- “한인상공인 여러분,그랜트나 대출기회 넘쳐요”
- “22일 베냐로야홀서 무료 공연 즐기세요”
- “전주서 열리는 세계한인비즈니스대회 신청하세요”
- 한인학부모회 미술대회서 리아 최,엠마 양 ‘대상’
- 서북미문인협회 20회 뿌리문학신인작가상 공모한다
- 창발 한인들 참여하는 자선기금마련 테니스대회 개최한다
- “시애틀 한인여러분, 호주와 뉴질랜드여행 어때요?”
- 한국학교서북미협의회, 5개 행사 종합시상식 열어(+화보)
- 이번 주말 제74주년 6ㆍ25 합동기념식 열린다
- 재미대한탁구협회 회장배 대회 열린다(+영상)
- 시애틀 통일골든벨 ‘성공’…김환희군 1등 영광 차지(+영상,화보)
- <속보> 오늘 정부납품 세미나서 한인상공인 위한 플렉스 펀드도 설명
- [신앙칼럼-최인근 목사] 기다림의 미덕(美德)
- 오리건 김성주의원 차남 미 공군사관학교 졸업
시애틀 뉴스
- 시애틀서 장장 56년간 아이들 가르친 여교사 은퇴
- 시애틀 방치된 빈집 강제철거 빨라진다
- "아마존, 직원들에 MS 클라우드 플랫폼 데이터 수집 지시"
- 아마존 시애틀 등 서민주택사업에 14억달러 추가 투자한다
- 올 여름에도 시애틀 '누드비치 공원' 그대로 운영된다
- 삼성 이재용, 시애틀서 아마존 CEO만나
- 시애틀 매리너스 23년만에 디비전 1위 노린다
- "타코마 교차로 위험 알고도 방치해 6명 사망"(영상)
- 애완견 데리고 캐나다 가는 것 어려워진다
- <속보> 지난 주 사망한 유명 워싱턴주 우주인 앤더스 사망원인은 ‘타박상’
- MS-애플-엔비디아 시총 1위 두고 사투…‘시총 삼국지’
- 억울한 살인죄 뒤집어쓰고 23년 복역했지만 "보상은 안돼"
- 시애틀 차이나타운 전 베트남마켓 건물서 화재 발생
뉴스포커스
- 의협 '3대 요구안' 제안, 정부 '거절'…'전면휴진' 일촉즉발
- 법도 환자도 등 돌린 진료거부…"무제한 자유 불가" 3대요구안 일축
- 당정 "130만 취약가구에 5.3만원…경로당 폭염지원금 6만원 인상"
- 대통령실 "상속세 전면 개편…종부세 폐지 필요"
- 민주 '명품백 수수 청문회' 추진…출석 불응시 '동행명령장' 검토
- 노소영 "서울대 후배들에게 실망…지방대 학생들에 감동" 무슨 일?
- 새마을금고 전무·상무·차장·과장·대리 모두 처벌받아…무슨 일?
- 499일 눈물의 기억 '이태원 참사 분향소' 이전…슬픔도 함께 옮겨지길
- "아내도 6억 투자"…견미리 남편 허위공시 주가조작 '무죄→파기환송'
- 경로당 '무상점심' 주5회로 늘지만 '지역간 격차' 우려…국비지원 목소리도
- 대박 난 '1만원대 청바지'…이랜드리테일 NC베이직, 라이프웨어 브랜드 도약
- "넘사벽 팔도·유재석의 농심·재도전 오뚜기"…뜨거워지는 비빔면 전쟁
- "미워도 다시 한번"…외국인 복귀에 '8만전자' 보인다
- 문·이과 통합수능 '서연고→서고연' 순위 바꿨다
- "희대의 조작사건" "법치 파괴 공작"…여야, 이재명 추가기소 공방
- 서울의대 교수 비대위 "17~22일 교수 529명 휴진…54.7% 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