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정동순] 거북이 마라톤
- 23-07-10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거북이 마라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뭔가 특별한 일이 있기 마련이다. 공통의 관심사가 있고, 함께라서 없던 힘이 생기기도 한다. 그 순간은 낯선 사람도 경계심을 풀고 친구처럼 다가온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7월1일, 한인 사회를 위한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 지역사회 곳곳에서 이민자의 삶을 살다가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가 만나듯 일년에 한번 즐거운 마음으로 모인다. 바로 한인사회의 큰 사랑을 받는 거북이 마라톤 대회다. 2005년에 시작되어 올해로 17회를 맞이했다.
거북이 마라톤은 우리 가족에게도 늘 기다려지는 행사다. 토요일이라 늦잠을 잘 만 하지만, 아침부터 들떠 바쁘게 움직인다. 남편은 몇 해 전에 받은 노란색 티셔츠를 찾아 입고, 아들은 ‘거북이 마라톤 대회’라 쓰인 하늘색 셔츠를 입었다.
마라톤이라고 하니 달리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걷기 대회다. 페더럴웨이 셀레브레션 파크에서 출발하여 한우리 공원에서 돌아오는 대략 왕복 4마일 코스다. 달리기 대회가 아니니 방점은 ‘거북이’다. 거북이는 장수의 상징이 아니던가. 수년간 참여하다 보니, 해마다 다시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반갑다. 주변을 돌아다니며 아는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한인사회에서 활동하는 단체장과 회원들을 만나 인사하고 대화를 나눌 기회가 되기도 한다.
출발 전에 빠질 수 없는 몸풀기 운동이 ‘국민체조’다. 그리운 추억이 되살아나 반갑다. 한국에서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 아들이 어떻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체조를 잘 따라 하냐고 묻는다. 1977년부터 보급되어 체육 시간이나 운동 전에 매일 하던 체조가 아닌가. 그 시절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국민체조 시이~ 작’ 하면, 몸이 자동으로 반응하게 돼있다. 레트로 열풍 덕인지 국민체조 유튜브 조회 수가 1,300만이 넘었다고 한다. 오랜만에 하니 동작을 헷갈리기도 해 멋쩍은 웃음을 유발한다.
출발신호에 맞추어 씩씩하게 걷는다. 온 가족이 참여하기도 하고, 친구와 약속을 잡아 운동 삼아 오고, 산악회를 비롯하여 여러 단체에서 함께 참여하기도 한다. 달리기를 좋아하시는 분은 뛰기도 한다. 달리는 분의 근육은 역시 맨눈으로 보기에도 탄탄하다.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아이들도 걸음이 가뿐하고, 강아지들도 신나게 걷는다. 야생화도 많이 피었고, 트레일 주변에 야생 산딸기가 보였다.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으니 그다지 멀게 느껴지지 않는 길이다. 해가 났어도 바람이 솔솔 불어와 덥지 않다.
반환점이 가까워지면 길에도 그늘이 드리워지고 걸음이 빨라진다. 커피와 도너츠가 기다리고 있다. 다이어트 중이라 해도 이날은 꼭 도너츠를 맛봐야 한다. 내 경험으로는 1년 중 가장 맛있는 도너츠이기 때문이다. 커피와 도너츠로 에너지를 보충했기 때문인지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길은 훨씬 짧게 느껴진다. 행사를 위해 해마다 자원봉사를 하는 페더럴웨이 한인 학부모협의회 소속의 길 안내 봉사를 하는 학생들에게도 수고한다고 인사한다.
셀레브레이션 파크에 다시 도착하면 완주기념 도장을 받고 기념품을 받는다. 그동안 행사에 참여하며 무료로 받았던 셔츠의 색이 연노랑에서 파랑, 초록, 노랑 등으로 바뀌었다. 지난해부터는 티셔츠 대신에 일회용 비닐을 줄이기에 좋은 고급 쇼핑백을 선물로 받았다. 지역사회 비즈니스의 협찬이다. 그 안에는 손소독제, 물티슈, 작게 접을 수 있는 장 가방 등이 들어 있다. 한국 왕복 항공권을 비롯한 경품 추첨도 있었다. 자기 번호가 불리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기뻐서 두 손을 흔들며 달려 나간다. 경품 추첨이 다 끝나자 올해는 상품이나 종류가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물가가 너무 오르니 그럴밖에. 자리를 털고 일어서면서 생각했다.
한국일보는 해마다 수백 명의 한인이 모이는 거북이 마라톤을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참가자는 운동하고, 친교하고, 선물도 받고, 운이 좋으면 경품에도 당첨된다. 한인 불우이웃돕기를 비롯하여 이런 행사를 매년 주최하고 있는 신문사가 지역사회에 주는 선한 영향력이다. 인터넷 매체가 범람하는 시대에 종이 신문에서만 얻을 수 있는 정보와 한인사회를 대변하는 힘이 있다. 내가 독자로서 구독료를 내면서 한국일보 구독을 멈추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거북이 마라톤에 가서 한인들의 활기찬 에너지를 받아온다. 가슴 속에 큰 함성이 메아리친다. 우리가 이렇게 함께 하고 있어요. 올해도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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