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반란' 푸틴이 자초했다…20년간 곪아온 철권적 통치술의 폭발

[위기의 러시아, 추락하는 푸틴 ③] 1인 통제 시스템서 갈등 부추기며 세력 강화
戰時엔 안 먹혀…정치적 영향력 확대하려던 프리고진·제때 못 막고 오판한 푸틴

 

 "이번 사태는 푸틴이 23년간 러시아를 통치하면서 구축한 비공식 권력구조의 놀라운 결과"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일인지배에 의한 철저한 통제구조에서 비롯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엄격한 톱 다운(top-down)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각 세력 간 갈등을 부추기고, 이 갈등과 불만을 제때 봉합하지 못한 게 반란의 시발점이라는 분석이다.


◇푸틴 권력 뒷받침한 올리가르히·실로비키

푸틴 대통령은 올리가르히(신흥재벌)과 친위세력인 실로비키(siloviki)를 권력의 양날개로 삼았다.

러시아어로 '제복을 입은 남자들'을 뜻하는 실로비키는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 후신인 연방보안국(FSB)을 비롯해 정보기관, 군, 경찰 출신 인사를 일컫는다. 정보요원 출신 푸틴의 '이너 서클' 핵심 인물들로 주로 크렘린 행정실 고위직을 맡는다.

올리가르히는 소련 붕괴 이후 국영 자산을 헐값에 사들이며 부를 축적한 신흥재벌이다. 소수의 올리가르히는 정권의 비호로 러시아 경제를 좌지우지해 왔으나, 조금이라도 반(反)정권 성향을 띠면 축출됐다.

여기에서 푸틴 대통령은 모든 결정의 최종 중재자였다. 그는 후원과 박해라는 시스템으로 엘리트 구성원 누구도 한 분야 이상에서 권력과 영향력을 얻을 수 없도록 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기관도 자신을 전복할 만큼 세력을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푸틴 대통령은 '일대일'로 자신의 심복들과 소통했다. <약한 독재자: 푸틴 러시아 권력의 한계>의 저자인 티모시 프라이는 공산당 치하의 중국이나 군부 치하의 미얀마와 달리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 한 명과의 개인적 관계를 통해 권력이 배분된다고 설명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도 "푸틴의 독재적 경향이 커짐에 따라 체제 내에서의 진정한 권력은 대통령에 대한 지속적인 개인적 접근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됐다"며 "코로나19 이후 푸틴의 급격한 물질적 고립으로 이 핵심 인물들은 소수의 가까운 인물들로 좁혀졌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너서클'에 포함되는 대표적인 인물은 이번에 무장 반란을 주도한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사령관,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국가안보회의(NSC) 의장, 세르게이 나리쉬킨 해외정보국장 등이다.

푸틴 대통령은 이들 간 균형과 견제를 바탕으로 충성경쟁을 시키는 한편 이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해 왔다.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잠재적인 도전자를 차단할 목적이다.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은 신뢰할 수 있는 측근에게 주요 업무를 맡기고, 자신을 약화시킬 수 있는 라이벌의 부상을 막기 위해 권력체제를 사유화했다"며 "법원에서 의회, 언론 등은 그 자체로 영향력을 갖기보다는 푸틴 대통령을 따르는 내부 권력 투쟁의 도구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1인 통제 시스템서 갈등 부추기며 세력 강화…戰時엔 안 먹혔다

문제는 이러한 통치 체제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1인'이 흔들릴 경우 체제 전체가 붕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칼 빌트 스웨덴 전 외무장관은 "푸틴의 권력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철저한 통제에 의한 것"이라며 "일인지배에 의한 철저한 통제구조가 약화되면 전체 권력구조 자체가 무너진다. 푸틴 체제의 강점이었던 하향식 권력구조가 치명적 약점이 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마이클 맥폴 전 러시아 주재 미국 대사도 '저널 오브 데모크라시' 기고를 통해 "푸틴의 지배 엘리트 내부에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까지 한다"며 "전투에서 지면 비난 게임이 시작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러시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적었다.

맥폴 전 대사는 그 예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사령관을 불과 몇 달 만에 교체한 것과 프리고진이 바흐무트 전장에 탄약 보급이 부족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던 사실 등을 거론했다.

맥폴 전 대사의 주장처럼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한 일종의 '비난 게임'으로 이 실로비키 간 갈등을 부추겨 왔다. 대표적인 예로 지난해 10월 세르게이 수로비킨 육군 장군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열세에 몰리자 불과 3개월 만에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총사령관으로 교체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게라시모프의 승진과 광범위한 사령부 개편이 프리고진과 다른 실로비키, 또는 다른 강자의 도전에 맞서 러시아 국방부와 같은 전통적인 권력 구조를 강화하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현 상황이 이전과 같은 통치술이 먹히지 않을지도 모르는 전쟁 상황이라는 점을 간과했다.

쿠데타를 연구해온 해밀턴대학의 에리카 드 브루인 교수는 NYT에 "독재자가 해외에서 전쟁을 벌일 때, 특히 엘리트들이 갈등을 잘못 인도한 것으로 보는 경우 권위주의적 통치자와 그들의 핵심 엘리트 지지자들 사이의 관계는 긴장될 수 있다"고 전했다.

온라인 매체 더 컨버세이션도 "궁극적으로 푸틴만이 부하들 사이의 분쟁을 중재할 수 있다. 이는 푸틴에게 도전할 수 있는 권력 기반을 구축하려는 부하들의 능력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정치 체제에서 그의 중요성을 강화한다"며 "이러한 정치 체제는 자신의 영향력과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인 평시에는 매우 효과적이지만, 갈등이 임박하거나 완전한 전쟁의 시기에는 오히려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치적 영향력 확대하려던 프리고진…제때 못 막고 오판한 푸틴

실제로 프리고진은 지난해 9월 바흐무트 전장에 투입된 이래 꾸준히 러시아 국방부를 향해 쓴소리를 뱉어 왔다. 단순히 보급품이나 탄약이 부족하다는 것을 넘어서 쇼이구 장관과 군 참모총장이 비겁하고 부패했으며, 러시아인을 학살했다고 비난했다.

이 같은 프리고진의 행보는 전쟁 상황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포석을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KGB나 FSB 출신이 아닌 식당과 카지노 등을 운영하다 푸틴 대통령의 눈에 든 프리고진은 여타 실로비키보다 정치적 기반이 약할 수밖에 없다.

ISW는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의 명성을 희생시키면서 바그너그룹을 끈질기게 홍보했으며 러시아 소셜 미디어와 국영 매체에 그의 화려한 광고를 두 배로 늘려 자신의 군대의 우월성을 주장했다"고 결론지었다.

외교정책위원회 '우크라이나 프리즘'의 전무이사 헤나디 막삭도 "프리고진은 정치적 약점을 상쇄하고 푸틴의 관심을 끌기 위해 도발적인 접근 방식을 택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소련과 동유럽을 연구하는 블라드 미크넨코 교수도 뉴스위크에 "프리고진의 목표는 공식적인 정부 직위 또는 큰 정치적 리더십 역할을 얻는 것"이라며 "그의 군사 자산을 러시아 내 유형의 경제 및 정치적 자산으로 전환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국방부를 향한 프리고진의 '말'들은 푸틴 대통령에게는 '예뻐하는 개'의 '짖음' 정도로 치부됐다. 푸틴 대통령이 군부의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한 술책의 일환으로 그를 저지하지 않았다는 것.

러시아 안보 전문가이자 저널리스트 안드레이 솔다토프는 "가장 비참한 전쟁(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매우 인기있는 장군은 나오기 때문에 (푸틴은 이러한 강자의 등장을 저지하기 위해) 매우 약하고 타협적인 사람(프리고진)이 필요했다"고 NYT에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의 계획은 프리고진이 계속 말하도록 하는 것이었지만, 그의 계산은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바그너 용병그룹이 반란을 멈추도록 중재한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도 이례적으로 푸틴 대통령의 오판을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세 사람(푸틴·쇼이구·프리고진)이 상황을 오판했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해결되지 못했다"며 푸틴 대통령이 쇼이구 장관과 프리고진 간 갈등을 중재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푸틴이 예뻐하던 개는 짖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선언했다. 반란은 일일천하에 그쳤으나 다른 개들이 몰려올지도 모를 일이다.

군사 쿠데타를 연구해온 에어 워 칼리지의 나우니할 싱 교수는 NYT에 "푸틴은 이제 도전할 만큼 나약한 존재로 기록됐다"며 "이제 다른 도전자가 나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스티븐 홀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러시아 작전 총괄책임자도 USA투데이에 "푸틴이 그룹(실로비키)의 지지를 잃으면 거의 즉시 쫓겨날 수 있다"며 "그들이 이 문제와 관련해 어떻게 생각하고 그 결정까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전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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