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일 우크라戰 이어 쿠데타까지…구소련 뒷마당서도 러 영향력 약화

 

[위기의 러시아, 추락하는 푸틴 ②] 중앙亞 탈러시아 본격화하나
조지아·몰도바 EU 가입 신청에 '나토' 튀르키예 영향력 커져


"푸틴은 옛 소련 뒷마당을 잃고 있다."

러시아는 옛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었던 중앙아시아 5개국(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투르크메니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과 캅카스 3개국(조지아·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을 '뒷마당'으로 여겨왔다. 소련 해체 후에도 군사적·경제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바그너그룹의 무장 반란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24일(현지시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통화했다. 토카예프 대통령은 반란을 '러시아 내부 문제'라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은 샵카트 미르지요예프 우즈베키스탄 대통령과 니콜 파시냔 아르메니아 총리에게도 전화해 러시아 상황을 전했다. 중국과 이란은 관련 질문에 "최근 러시아에서 발생한 사건은 러시아 내부 문제"라고 일축했다.

러시아와 긴밀하게 협력하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 역시 푸틴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직접적인 위기의 종식을 이끌어낸 건 러시아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동맹국인 벨라루스였다. 바그너그룹은 벨라루스 정부의 중재 아래 크렘린궁과 협의를 맺고 철수하기로 했다.




◇러시아와 거리두는 카자흐…중앙亞서 영향력 확대하는 中

일각에서는 카자흐스탄의 '애매한' 반응을 두고 중앙아시아 지역의 탈러시아가 본격화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의 유라시아센터 부국장인 앤드루 다니에리는 "'러시아의 내부 문제'라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말은 지정학적 비중이 매우 크다. 이는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의 '내정'을 돕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다"고 평가했다.

불과 18개월 전 카자흐스탄 내부에서 민중 시위가 무장 봉기로 번졌을 때, 러시아는 집단안보조약기구의 평화유지군을 파병해 사태의 조기 수습에 기여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은 이러한 도움의 손길을 전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다니에리 부국장은 "이제 푸틴이 이와 유사한 위협에 직면한 상황에서 토카예프는 카자흐스탄이 러시아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신호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카자흐스탄과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긴 육지 국경을 공유하고 있지만, 토카예프는 이제 카자흐스탄과 러시아 사이에 거리를 둘 만한 외교적 공간을 모색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옛 소련 동맹국에 대한 구심력을 잃었다는 지적은 줄곧 제기돼 왔다. 러시아의 핵심 군사력이 우크라이나 공격에 동원된 데다 서방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는 '제 한몸 간수하기도 힘든' 입장이 됐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해 11월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은근히 모욕당하고 있다"면서 "이 추세는 러시아 경제가 타격을 받으면서 더 뚜렷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 외교정책연구소(FPRI)의 중앙아시아 연구원 막시밀리안 헤스는 "푸틴 대통령은 오랫동안 중앙아시아를 러시아의 가장 안정적인 지역으로 여겨왔다"며 "그러나 수십 년간의 안정 끝에 지난해부터 러시아의 영향력은 전례 없는 속도로 악화됐다"고 분석했다.

러시아 내부 군사력 약화, 경제력 쇠퇴라는 틈을 비집고 들어온 건 중국이었다. 헤스 연구원은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영향력을 잃은 가장 큰 원인으로 중국의 부상을 꼽았다. 그는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는 더 이상 지역 패권국이 아니다. 중국은 이미 이 지역에서 최고의 경제 강국으로 매김했다"고 전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 국가와 스킨십을 확대해 나가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생긴 권력 공백을 메우려 하고 있다. 지난 5월 중앙아시아 5개국과 수교 31년 만에 오프라인에서 여는 첫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중국과 5개국의 교역액은 지난해 700억 달러(약 93조원)에 달한다. 올해 1분기에는 교역액이 전년 동기 대비 22% 증가했다. 지난 3월 말 중국의 중앙아시아 직접투자 규모는 150억 달러(약 20조원)를 넘어섰다.

중앙아시아는 중국의 중요한 에너지 공급국이기도 하다. 중국은 한때 중국-중앙아시아 파이프라인을 통해 천연가스의 30%를 공급받았다. 베이징, 상하이 및 기타 도시의 주민들은 이미 투르크메니스탄의 천연가스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亞 외 우방국에도 힘 못 쓰는 러…몰도바·조지아는 EU 가입 신청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아르메니아, 몰도바에 이르기까지 동맹국으로 간주되는 다른 국가들로 하여금 러시아의 역할을 재평가하도록 했다.

러시아는 상하이협력기구(SCO)와 독립국가연합(CSI)을 통해 국경 지역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왔는데, 지난해 중앙아시아 국가 간 국경 문제가 유혈 사태로 번졌다.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국경 수비대가 국경 문제를 놓고 충돌했고, 나고르노-카라바흐 영토를 두고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도 무력 충돌했다.

아르메니아의 파시냔 총리는 푸틴 대통령의 면전에서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아르메니아가 옛 소련권 군사안보협력체인 집단안보조약기구(CSTO) 회원인데도, 러시아가 아제르바이잔의 공세를 억제하지 못하는 것은 실망스럽다는 것.

아르메니아의 수도 예레반 지역 연구 센터장인 리처드 기라고시안은 영국 가디언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실패에 압도당하고 있다"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나고르노-카라바흐에 대한 외교 주도권을 잃었다"고 평가했다.

특히 영토의 일부가 러시아군에 점령된 몰도바와 조지아는 이번 전쟁으로 인해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고 있다.

조지아는 1990년 자국 영토 내 압하지야·남오세티야가 러시아 지원으로 분리 독립한 이래 반러시아 감정이 만연한 상태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위협이 가시화하자 개전 며칠 뒤 우크라이나, 몰도바와 함께 유럽연합(EU) 가입을 신청했다.

몰도바도 조지아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러시아가 몰도바의 친러시아 분리주의 지역인 트란스니스트리아에 무력 도발을 감행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몰도바에 있는 유럽 정책 및 개혁 연구소의 율리안 그로자는 "지난해 전쟁이 시작된 이후 러시아에서 오는 모든 안보 위험이 커지고 있다"며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야망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몰도바 등에 통제력을 높이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새로운 외교 장 열릴 듯…튀르키예, 러시아 영향력 넘을까

결국 이러한 친(櫬)러시아 국가들의 이탈은 이 지역에서 새로운 외교 시대를 열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다니에리 부국장은 "바그너그룹의 반란은 푸틴 정권의 불안정한 성격과 러시아 국경 내에서조차 권력을 행사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드러냈다"며 "유라시아에서 러시아의 우위는 한때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제 러시아 권력의 망령은 이 지역에서 약해지고 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쇠퇴하는 러시아의 권력은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서방, 중국, 튀르키예 관계를 발전시키려 함에 따라 중앙아시아와 남코카서스에서 보다 독립적인 외교 정책의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보다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이 중앙아시아에서 확고한 안보 입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튀르키예의 영향력이 확장할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진 저지를 우크라이나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참패를 맛보게 된다.

스테판 헤들런드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러시아학과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 무기 생산자들에게 재앙이었지만 튀르키예의 위상을 높여 튀르키예가 카자흐스탄 및 우즈베키스탄과 진지한 거래를 성사시킬 가능성을 높였다"며 "동시에 에너지 흐름을 아제르바이잔에서 튀르키예로, 그리고 유럽으로 연결하는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는 데 성공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튀르키예가 나토 회원국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잔인한 공격은 오히려 나토 확장을 촉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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