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장 "대한민국 원년은 1919년… 부정하면 극좌·극우"

백범 김구 선생 74주기 추모식… "왜곡 없이 사상·활동 기록"

 

이종찬 광복회장이 26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을 "대한민국의 원년"으로 규정하고 "이를 부정·왜곡하는 세력은 극좌파 친북 이적 집단 혹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고의로 폄하·왜곡하는 소위 극우세력"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백범 김구 선생 74주기 추모식에 참석, 추모사를 통해 "오늘의 대한민국 정체성은 1919년 (3·1)독립선언, 대한민국임시정부 헌장, 우리의 제헌 헌법 전문"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 회장은 "오늘(6월26일)은 우리 민족의 참 스승이었던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매우 애통한 날"이라며 "그날 한반도에서 민족사적 정통성을 확고히 세우는 정부로, 분단을 뛰어넘는 완전한 대한민국을 바로 세우겠다는 온 겨레의 꿈이 한순간에 멈췄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백범 선생이 주장한 분단 없는 평화통일을 많은 이들이 곡해하고 아전인수하고 있다"며 "선생이 진정 바란 건 남북의 한민족이 사상으로 갈라져 서로 총을 쏘고 죽고 죽이는 상황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앞으로 광복회는 (백범) 선생의 사상과 활동을 왜곡 없이 역사에 기록할 것"이라며 "선생이 진정으로 민족을 사랑하고 자주독립의 역사를 지향했다는 뜻을 우리 후진들에게 교육하겠다"고 밝혔다.

1876년 8월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난 백범 선생은 1894년 동학군의 선봉장으로 활동했고 1905년 일제에 의해 '을사조약'이 강제 체결된 뒤엔 이준·이동녕 선생 등과 함께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백범은 1908년엔 비밀 결사 '신민회'에 가입해 조국 독립운동을 전개했고, 의병활동과 계몽운동 등 다양한 항일투쟁에도 관여했다.

1919년 '3·1운동' 직후 중국 상하이(上海)로 망명한 백범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경무국장과 내무총장·국무령·주석 등을 거쳤다.

1945년 8월 광복 후 그해 11월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백범은 1949년 6월26일 사저 '경교장'에서 안두희의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정부는 백범 선생의 생전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엔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과 이 회장, 독립유공자 유족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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