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생각-김윤선] 빈자일등(貧者一燈)

김윤선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빈자일등(貧者一燈)

 

배추 한 포기를 샀다. 샤브샤브를 해먹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날 이후 집에서 차분히 그것을 해먹을 기회가 없었다. 내일, 내일 하다가 일주일이 지났고 그리고는 잊어버렸다. 게다가 차고에 있는 냉장고에 넣어두었더니 쉬 눈에 띄지 않았다. 

한 열흘이 지나서야 문득 배추 생각이 났다. 때마침 비도 내려서 배춧국 끓이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마치 오늘을 위해 비축해 두었던 듯 신바람이 났다. 배추를 꺼냈다. 

배추는 비닐봉지에 싸인 채 처음 그대로의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진작 신문지에 싸둘걸, 얼른 보니 색과 모양을 잃지 않았다. 오우, 예스. 쾌재를 부르며 도마에 놓고 키대로 반을 쩍 갈랐다. 어머나, 이럴 수가. 겉보기는 멀쩡한데 속에 들어갈수록 이파리마다 검은 곰팡이 같은 게 점점이 박혀 있었다. 이게 웬일, 곰팡이가 이곳을 비밀의 방으로 삼은 것일까. 아니면 주인의 무관심한 손길에 화난 배추가 스스로 분노를 키운 흔적일까. 

예전에 샀던 바람 든 무도 그랬다. 암팡진 무가 겉모양과는 달리 속에 듬성듬성 구멍을 내어서 바람을 잔뜩 들여놓고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그때의 낭패감이라니, 세상사 겉모습에 혹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바람 든 무는 채수라도 낼 수 있지만, 곰팡이 슨 배추를 어디에 쓰랴. 쓰레기통에다 팍, 던져 넣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한다고 한순간에 국거리를 잃은 낭패감에 혼자서 씩씩거렸다. 따지고 보면 배추 탓이 아니었다. 때맞춰 먹지 않은 내 게으름이고 허술하게 보관한 내 실수였다. 먹거리로 자라기 위해 견뎌낸 지난 시간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렸으니 저로서도 억울하고 원통하지 않았을까. 씨를 발아하고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우고 속을 채우느라 보낸 시간을 지금이라도 보상하라고 대들 것 같았다. 차라리 내가 사 오지 않았더라면 누군가의 먹거리가 됐을 텐데. 

최근에 총기사건이 잦다. 특히나 초등학교 교정에서까지 무차별 난사가 이어지고 있다. 교사와 아이들이 사망한 충격적인 사고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엔 텍사스주 댈러스 교외에 있는 대형 쇼핑몰인 앨런 프리미엄 아울렛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안타깝게도 한인 가족 세 명이 희생당했다. 아들이 생일 선물로 받은 옷이 커서 교환하려고 나왔다가 변을 당했다고 한다. 범행동기가 분분하지만, 이들 사건의 대부분이 가슴속에 쌓인 분노의 폭발에서 비롯된다.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한다는 울분, 냉장고 속 배추의 분노를 이해할 만하다. 

사람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사람 간에 소통이 있어야 한단다. 관심과 사랑의 물주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소통은 분노를 녹이는 통로다. 그런데 손끝만으로도 세상과의 소통을 일삼는 IT세대 젊은이들의 우울증 호소가 늘어나는 건 웬일일까. 접속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접촉의 온기 부족 때문이 아닐까. 

5월은 사랑을 전하는 달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가족 사랑으로 마음이 따뜻하다. 게다가 미국을 위해 싸운 모든 전사자를 기리는 메모리얼 데이도 있다. 소통한다는 건 반드시 산 사람과의 교감만을 의미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부처님 오신 날(음력 4월 초파일)도 있다. 올해 봉축 표어는 ‘마음의 평화, 부처님 세상’이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인한 불안한 일상을 이겨냈으니 부처의 가르침으로 마음의 평화를 찾고, 모두가 평등하게 공존하는 부처님 세상 되기를 염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게는 모두가 마음을 열고 소통을 많이 하라는 말로 들린다. 소통이야말로 서로의 갈등을 녹이는 영약일 테니. 

부처님 오신 날에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는 말이 마음을 움직인다. 석가모니 부처가 사위성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왕과 백성들이 등 공양을 준비했다. 가난한 노파인 난타 또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등을 공양했다. 그런데 밤새 강한 바람으로 모든 등불이 다 꺼졌는데 오직 난타가 공양한 등만은 불이 꺼지지 않았다고 한 데서 비롯한 말이다. 물질보다 정성이 더 중요하다는 가르침이지만 나는 부처와 그녀 사이에 이루어진 감정의 소통을 읽는다. 부처에게 귀의하는 낮은 자세와 가난한 노파에게 베푸는 부처의 자비심이 올 5월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공연히 심통을 부리며 쓰레기통에 쑤셔 박은 배추에 멋쩍다. 슬쩍 뚜껑을 열어보니 웃어 보일 수도, 화내 보일 수도 없는 엉거주춤한 내 얼굴에 대고 배추가 말했다. 

“니 마음이 내 마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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