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新냉전] 의대에 뺏기고 中 채가고…'인력 전쟁' 삼성·SK

'반도체 인력 전쟁' 발발…기술력 갖추고 외부 인력 충원 필수

정부·기업·대학 '삼박자' 맞춰 디테일한 인재 육성책 마련해야


"애국심만으로 일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일하고 싶은 회사여야 사람이 모입니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인력난'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반도체 인재 확보를 위해 기업과 정부, 대학이 나서 반도체 계약학과 개설하고, 기업 자체적으로도 복지 개편과 임금 인상 등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해답은 결국 '기술 리더십'이라는 이야기다.   

업계 관계자는 "기술 리더십과 업계 1위라는 프라이드를 심어주면 기존 인력 유출은 막고 새로운 인력들은 자연스레 찾아올 것"이라며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면 인재가 모이고, 이 인재들이 기술 초격차를 유지하는 식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특히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평택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공장. 22.09.07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평택에 위치한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공장. 22.09.07 © 로이터=뉴스1 © News1 권진영 기자


◇"반도체 인재 전쟁"…필수 인력 뽑고 기술경쟁력 갖춰야

선순환 구조를 만들면 기업은 그만큼의 수익을 내게 되고 이를 직원 복지나 보상에 활용하거나 기술·설비 투자에도 사용할 수 있다. 우수 인재를 뽑는 것도 수월해진다. 문제는 당장 가용할 인력이 부족해 선순환 구조의 첫 단추를 끼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전 세계 모든 기업과 국가들이 기술·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미·중 반도체 패권 전쟁으로 미국 내에서 인력 수급이 어려워진 중국은 최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공장 앞에서 '뻗치기'를 하며 현장 채용에 더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미국은 최근 반도체 설계에 집중해 왔던 것과 달리 제조에도 눈을 돌리며 관련 인력 확보를 가속하고 있다. 유럽과 일본 역시 반도체 부활을 꿈꾸면서 반도체 인재 확보를 위한 '총성 없는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눈앞이 깜깜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의 경우 반도체 생산, 연구개발까지 전 분야에서 매년 3000명, 향후 10년간 3만명의 인력 부족이 발생한다는 관측이다. 2030년까지 미국은 30만명 이상이 모자라고, 중국도 여전히 약 25만명이 부족한 실정이다.   

대학교 계약학과를 통해 인재를 육성하는 것과 별개로 '첫 단추'를 끼우기 위해선 전문인력을 외부에서 충원하는 방법도 적극 동원하고, 기술 투자도 지속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시기에 파일럿을 빼가는 것처럼 중국의 반도체 인력 탈취 행태는 2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인력 부족 문제는 전 세계적 현상"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간에도 인력이 이동하기도 하고 외부로 이탈하는 경우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당장 써야 하는 인력을 국내외에서 적극적으로 찾아 데려오고 기술이나 설비 투자 역시 미래에 대비해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2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열린 종로학원 초중 학부모 대상 고교 및 대입 설명회를 찾은 학부모가 자료집을 살펴보고 있다. 2023.5.20/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20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열린 종로학원 초중 학부모 대상 고교 및 대입 설명회를 찾은 학부모가 자료집을 살펴보고 있다. 2023.5.20/뉴스1 © News1 장수영 기자


◇이대로는 '100전 100패'…디테일한 인재 육성 대책 필요

국내 대학교를 중심으로 반도체 전문 인력을 키우겠다는 계획도 삐걱대는 모습이다.

삼성전자(005930)는 2029년까지 매년 450명의 반도체 전문 인력을 길러내겠다는 목표로 국내 7개 대학에서 반도체 계약학과를 운영 중이다. SK하이닉스(000660)도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 등과 손잡고 계약학과를 운영하고 있다. 계약학과는 졸업 후 채용을 조건으로 입학생을 모집하는 학부 과정이다. 

다만 입사가 보장된 반도체 계약학과의 정시 등록포기율이 모집인원 대비 150%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다수가 계약학과에 합격하고도 의대나 한의대, 치대로 빠져나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상 계약학과가 의대 탈락 후에 선택하는 일종의 '보험'이 된 셈이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반도체 기업에 취업하는) 기존 화학공학과, 신소재공학과, 전자전기공학과와 반도체 학과 간에 사실 큰 차이가 없다"며 "특별 계약학과를 만들면 우수 인력이 갈 수 있고 취업과 연계된다는 정도의 차이만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대로) 이탈하는 것을 두고 여러 기업 및 관계자들과 이야기해도 별다른 방법이 없다"며 "과거와 비교해 인력 수준도 떨어지고, 가르치는 교수도 똑같은데 이대로 가면 100전 100패다. 정부, 기업, 대학끼리 더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반도체 제조·설계·패키징 등을 총망라해 기업에서 필요한 인력 수요를 정부가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종합적인 인력 육성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학 역시 위기 상황임을 인식하고 반도체 인재 육성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반도체 인재 육성 정책에 업계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업계 목소리를 더 새겨들어야 한다"며 "대기업 병역 특례를 도입하고 산업체 경험이 있는 사람을 전임교수로 뽑는 등의 전향적인 대책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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