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이야기-전병두 목사] 창을 닦는 사람

전병두 목사(오리건 유진 한인장로교회 담임)

 

창을 닦는 사람  


창가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는 한산했습니다. 마주하고 앉은 유리창 앞에 60대 가까이 보이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손에는 기다란 창 닦이 걸레가 쥐어져 있었고 바케스 안에는 맑은 비눗물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아주 능숙한 솜씨로 통 유리창을 비눗물로 닦았습니다. 막대기를 바꾸어 위에서 아래로 조심스럽게 닦아 내렸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유리에 묻어 있던 먼지가 사라지고 수정 같이 맑아졌습니다. 그 막대기에는 고무로 입혀진 날이 달려 있었습니다. 

“굿 모닝? 하이, 하우 아류?” 창을 닦는 사람의 표정은 너무나 밝았습니다. 친구와 이야기 하는 것처럼 우리는 금방 대화를 주고 받았습니다. 

그는 브라이스(Brice)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안 주머니에서 꺼내 준 명함에는 '윈도우 맨 브라이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창을 닦는 일을 42년 동안 해 왔다고 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이 일을 해 왔다는 사실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이야기를 나눌 수록 호기심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그가 처음 창을 닦는 일을 배운 때는 20대 초반이었습니다. 얼마 못되어 사장이 멀리 이사를 떠나는 바람에 자기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고 했습니다. 

먼지를 뒤집어 쓴 창들을 깨끗하게 닦을 때 마다 그렇게 마음이 상쾌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창너머로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보는 것도 보람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을 안 후 그는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도 유리창 닦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에서 배운 심리학의 이론을 무수한 사람 들과의 만남 속에서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다양한 사람들을 보고 만난다는 것은 그에게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창문을 사이에 두고 체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수입도 짭짤했습니다. 

창문 닦는 일을 한 이후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하루 하루가 즐거웠고 보람되었습니다. 그의 밝은 표정에서 확인시켜 주는 듯 했습니다.

거리의 온갖 먼지와 티끌로 흐려진 유리 창을 맑은 시냇 물 처럼 닦고 나면 마치 혼탁해 진 마음을 맑은 물로 씻은 것 처럼 기분이 좋다고도 했습니다. 

얼굴에 땀 방울이 맺히도록 부지런히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잠시 저를 쳐다 보았습니다. 

어쩌면 그가 전공한 심리학 이론으로 이미 앞에 앉은 대화 상대자의 마음을 간파했는 지도 모릅니다. 사실 그 때 짧은 순간이었지만 제 자신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브라이스가 떠난 후 밝은 햇살이 창을 통해 더 빛나고 있었습니다. 유리창 밖을 지나가던 행인의 밝은 웃음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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