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확산중인 '냄비 시위'…조리 도구가 어떻게 저항의 수단됐나

200년 전통의 냄비 시위…소음 내며 '배고픔'과 '부당함' 표현

마크롱 대통령 "냄비로는 프랑스가 전진할 수 없다"


어느 집에나 있는 조리 도구지만 세계적인 저항의 상징이었던 냄비가 다시금 시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장 최근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방을 방문했다가 그의 연금 개혁을 반대하는 냄비(시위대)와 맞닥뜨렸다. 냄비 또는 팬을 두드려 커다란 소음을 내는 이 시위 형태는 약 200년의 전통을 갖고 있다.

20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냄비가 두 번째 삶을 살게 된 것은 1830년대 프랑스에서부터다. 당시 7월 혁명으로 샤를 10세가 퇴위하고 그후의 혼란상에서 냄비가 출현한 것이다.

역사학자에 따르면 새 국왕 루이 필리프 1세에 반대하는 공화당원들은 '샤리바리'라는 체인에 여러가지 장식을 달아 덜그럭거리게 한 장식품이나 큰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호소하려 했다. 이는 중세에 홀아비와 훨씬 어린 신부의 결혼 같은 맞지 않는 결혼을 망신주기 위해 프랑스어로 '캐서롤'이라고 부르는 냄비를 두드리던 것에서 유래했다.

 

냄비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들어와서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알제리 독립 전쟁 당시 알제리를 프랑스 식민지로 계속 두고 싶어한 프랑스 극우 준군사 단체 'OAS'의 지지자들이 냄비를 두드렸다.

냄비 두드리기는 대서양을 건너 라틴 아메리카로 건너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나무 숟가락으로 냄비를 두드리거나 심벌즈처럼 두드리는 '카세롤라소'라는 시위 방식이 탄생했다.

최초의 대규모 냄비 시위는 1971년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 시절 식량 부족에 맞선 시위다. '빈 냄비처럼 내 배도 텅 비었다'는 분노를 냄비 두드리기로 표현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연금개혁 강행은 프랑스에서 다시 냄비 두드리기 시위를 일으켰다. 지난 17일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개혁 관련한 TV대국민 연설을 하는 동안 프랑스 전역에서 대통령을 규탄하는 전국적인 냄비 시위가 열렸다. 19일에는 알자스주 뮈터솔츠에서 냄비 시위가 열렸는데,냄비 시위대와 마주친 마크롱 대통령은 "냄비로는 프랑스가 전진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일 프랑스 남부 에로주 당국은 대통령의 이 지역 방문을 앞두고 '휴대용 음향 장비' 소지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조치도 냄비 시위의 소리를 막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소지한 냄비는 맡겨야 하더라도 '아이카세롤라소(iCacerolazo)'와 '카솔라다 2.0'과 같은 스마트폰 앱이 금속 소리를 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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