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선택의 자유와 책임

김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선택의 자유와 책임


우리들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육신을 내 몸이라고 말합니다마는 엄밀히 말해서 내가 태어난 것은 내 뜻이나 바램이 조금도 반영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어 자원을 한 것도 아니고 노란 피부에 검은 머리의 인종을 내가 선택한 것도 아닙니다. 부모를 통해서 태어나긴 했지만, 그 부모들조차도 나의 체격이나 외모나 성격을 부모가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나’라고 하는 이 존재는 내 뜻도 아니고 부모의 뜻도 아닌 그 어떤 제3의 뜻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분명합니다. 그 제3의 뜻을 창조주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그 뜻에 삶의 기반을 두고 그 뜻에 생의 목적을 삼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처럼 내 뜻과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난 우리가 탄생한 후에는 달라집니다. 모든 것을 내 뜻과 의지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그 결과에 책임까지 져야 하는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부여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출생한 후에는 우리를 로봇과 같이 기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춰 작동하도록 고착시킨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임의로 선택하도록 하셨습니다. 그 자유는 우리가 언행 심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차원을 넘어 그 자유로운 선택의 체험을 통해 삶의 질과 신앙의 성숙을 이뤄갈 수 있어서 값지고 소중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전통이나 제도나 사회 규범에 따라 최종적으로 종교를 갖게 되는 것보다 적극적으로 모든 체험을 자유롭게 거치고 나서 어떤 종교를 선택할 때 신앙은 그만큼 더 돈독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남녀 간의 배우자나 또는 친구를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이 오랫동안 자유롭게 인격적인 교제를 거치면서 상대방의 장단점과 성격 등을 고려하여 선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어떤 강압이나 체면이나 그릇된 사회 풍조나 전통에서 벗어나 철두철미 내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결정하면서 그 결과로는 책임이라고 하는 무거운 짐이 부과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유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특전이요 축복인 동시에 그 자유를 오용하거나 남용할 때에는 막중한 책임이 따르게 되는 법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왜 저리도 죄악으로 가득 차 있느냐며 불평을 하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마는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그 귀한 자유를 인간이 남용하고 오용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 의지를 가지고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단호하고도 극단적인 경고를 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으리라. (신 11:26-28)”

우리 인생 앞에 놓인 길이 천 갈래, 만 갈래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단순하고 명쾌한 두 갈래 길, 즉 선한 길과 악한 길이 있을 뿐입니다. 비슷한 뜻이지만 의로운 길과 불의한 길, 참된 길과 거짓된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은 노력으로 받고 구원은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복은 복 받을 일을 하는 이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국민만큼 복을 좋아하고 갈망하는 국민도 없을 것입니다. 밥그릇에도 복, 수저에도 복, 베개, 이불, 치마, 저고리, 장롱 등… 온통 복 속에 묻혀 살 정도입니다. 그 복에 대한 열망 못지않게 복 받을 일도 함께 병행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이 성경 말씀을 다시 상기해봅니다. 복과 저주는 항상 우리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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