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송현] 메모리얼 데이를 앞두고 떠오르는 월남전 참전기
- 23-04-02
김송현 (오레곤한인교회장로회 감사)
*부산항에서의 출국과 월남 땅의 첫 발
지금 생각해도 한국이 월남 전에 파병한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월남전쟁에 참가한 것은 더욱 잘 한 일이었다. 돌아보니 1970년 2월 4일 부산항 제3부두에서 가족들과 수많은 학생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며 미 해군 수송선 Upshur호에 승선한 청룡 1개 대대 병력은 1주일간 항해 끝에 베트남 다낭에 도착하여 남쪽에 있는 호이안 지역 해병 제2여단 청룡부대 경비중대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현지 적응 훈련과 교육을 받고 디엔반 지역에 있는 1대대 3중대 2소대 3분대에 배치받았다.
우리는 1주일에 3번 정도 매복을 나갔고 여단 본부나 대대 작전과의 지시에 따라 작전을 나가곤 했다. 섭씨 40도가 넘는 무더위속에서 수십Kg가 나가는 전투장비, 전투식량, 수통 5개와 체격이 크다고 엑스트라로 LMG 탄통까지 등에 메고 정글을 몇Km 걷다보면 땀범벅이 됐고 물이 떨어지면 네이팜 폭탄으로 웅덩이가 패인 곳에 고인 물을 수통에 채워 정수제 하나 넣고 마시는 일은 다반사였다. 특히 밤이 되면 지독스런 모기떼와 싸워야 하는것도 큰 고역이었다. 많은 매복과 작전중 죽을 고비도 몇번 넘겼다.
베트콩들은 정면으로 공격하는 일은 많치 않았다. 그들은 정글을 이용해 숨어서 총을 쏘고 도망가거나 아주 높은 나무위에서 관망하다가 가까이 가면 동굴로 숨어 버리기 일쑤였다.
우리는 적을 찾으러 다니다 그들이 설치해 놓은 지뢰와 부비추렙에 희생되는 일도 있었다.
1971년 1월 19일 나는 귀국을 얼마 앞두고 자대 근무중이었다. 그 당시 청룡 2여단 황룡작전중이었다. 정오가 되어갈 무렵 큰 폭발음과 함께 검은 버섯구름이 하늘로 치솟았다.
잠시 후 무전병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동굴 입구를 검색하는 도중 소대장 황승룡 중위와 양승구 하사가 베트콩들이 설치해 놓은 부비추렙에 전사했다는 것이다. 소대장을 등에 업고 메드백 헬기(CH-47) 로 가던 강태구 상병도 부비추렙을 밟고 부상을 당했다. 그때 우리 소대는 마치 초상집 같았다.
황승룡 소대장은 지혜롭고 용감한 해병 장교였다. 그는 한때 소대원을 중심으로 특공대를 조직하여 야간을 틈타 베트콩들이 회의하는 곳을 덮처 큰 전과를 거둔 적도 있었다.
*국립현충원 찾아가 전우들에게 참배
미국 메모리얼 데이나 한국 현충일이 되면 50여년 전에 있었던 일들이 내 뇌리 속을 스쳐간다.
나는 미국에 살면서 1988년과 2022년 동작동에 있는 국립현충원을 찿아 소대장과 분대장에게 참배했었다. 국립현충원에는 무명용사 11만여위를 비롯하여 17만 9,000여의 순국 선열과 호국 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대부분 20대 꽃다운 젊은 나이에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병사들이여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발전된 조국이 있다고 생가한다..
베트남 전쟁은 1955년 11월1일 부터 1975년 4월 30일까지 약 20년정도 진행됐었다. 자유 우방국 미국이 전투에 개입한 것은 1964년 8월 2일 통킹만 사건을 계기로 본격적인 전투병 파견이 시작 되었고, 그후 한국을 비롯하여 총13개국 의용군이 개입했다. 한국은 1964년 9월 11일 의료봉사, 태권도 교관, 건설부대를 파견하기 시작하여 미국 존슨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에서 맥나마라 국방장관과 공동성명을 내고 65년 8월 13일 전투병 파병을 결정하고 청룡부대와 맹호부대를 시작으로 전투병력 파견을 시작했다. 세계의 시각은 당연히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과 장비로 쉽게 전쟁을 마무리 할줄 믿었다. 그러나 실제 상황은 많이 달랐다.
우리는 베트콩을 잡겠다고 정글을 헤메고 다니지만 베트콩인지 양민인지 구별하기 어려웠고 지리를 잘 아는 적들은 매복하고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쉽게 노출되고 공격당하기 쉬웠다.
또한 남베트남군의 내부에도 불순분자들이 있어 우방국으로부터 원조 받은 장비들도 적들에게 암거래되기도 했다. 부정부패가 심하고 독재 정치로 인권을 탄압하는 정부에 불만을 갖고 베트콩으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베트남 사회는 오랜 기간의 프랑스 식민지 지배를 벗어나 독립국가로 나아가길 원하고 있었지만 남베트남에 진주한 미군을 또 다른 점령군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가 됐다.
베트남전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는 1968년 1월 30일 구정 때의 공세부터였다. 월맹군과 베트콩들이 베트남 전역에서 총 공세를 시작 했으면 치열한 전투로 많은 사상자가 그때 발생했다. 이 때부터 베트남전의 운명은 바꿔지기 시작한다. 미국은 적들의 은신처인 정글을 없에기 위해 강력한 제초제 Dioxin 을 살포했고 때로는 네이팜 폭탄으로 불바다를 만들기도 했다. 종군 기자들은 미군들이 민가에 불을 지르고 양민학살, 강간하는 사실을 보도하니 여론은 급속도로 나빠져 대학가나 대도시에서도 연일 반전 대모와 방화로 수십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체포되었다.
또한 3만여명의 젊은이들이 군 징집을 피해 캐나다로 피신하여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으며 6만명 이상 징병을 기피했었다. 유럽의
대도시에서도 반전 운동이 퍼저 나갔다. 모든 전사자들은 영웅이 아니라 희생자들이라고 했다. 와중에 제인 폰다는 반전운동에 앞장서 월맹을 방문하고 지도자 호지명을 만나기도했다.
결국 1973년 파리평화협정을 통해 미군이 철수하자 북베트남의 총공세 앞에 남베트남 정권은 붕괴될 수 밖에 없었다. 베트남 정부가 스스로 지킬 의지와 능력이 없었기에 미국의 어떠한 노력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 사이공을 함락시켜 베트남은 공산화가 됐다.
우리나라는 1964부터 1972년까지 32만여명을 파병했으며 전사 5099명, 부상 11232명 그외 고엽제 피해자가 상당수라는 국방부 보고가 있었고, 미군은 10배 이상 인명 피해와 엄청난 군사장비를 다 버리고 철수했다. 미국이 베트남을 충분이 알지못하고 개입한것은 큰 실책이었다.
*국군 월남전 파병으로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
우리 정부가 장병을 파원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경제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60년대 중반만 해도 북한, 필리핀도 남한보다 경제사정이 좋았다. 미국 정부로 부터 파병제의를 받았을 때 그 당시 한국에 파견된 미 대사 Winthrop G. Brown을 통하여 10가지 군사원조와 6가지 경제원조 각서를 받아냈다. 모든 보급품은 한국에서 구매, 군현대화, 경제원조,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 기술자 파견이었다.
미 정부로 부터 받은 무상원조와 파월장병이 받은 수당은 과히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
그 당시 한국군 사병이 받은 수당은 월 $40-50 정도였고 그중 82%를 송금하여 외환 보유액의 40%를 차지했다. 64년 파병 직전 대한민국의 GNP는 103달러였고 74년 파병후 GNP는 5배가 넘는 541달러였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새마을운동과 경제개발을 순조롭게 이뤄낼 수 있었던것도 주월한국군의 피와 땀의 결실이고 경제를 발전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파병이 없었다면 현재 세계경제 10위권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세상에 전쟁은 없어야 한다.
참전한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 전쟁터에서 사망한 사람 이상으로 죽는다. 자살하고 살인하고 죄책감과 괴로움을 잊기위해 마약하고 가정이 파괴되기도 한다. 현재 전쟁중인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도 하루 속히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길 기원한다.
우리의 조국도 이제 남과 북이 대화하고 협력해 평화통일 이뤄지길 원한다. 같은 민족이요 형제이지만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이다. 우리가 적대 행위하며 시간 낭비하지 말고 남북이 하나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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