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안예솔] 그런 밤

안예솔(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그런 밤

 

요동치던 밥솥이 잦아들고

뚜껑 열린 바닥에 제멋대로 포개 누운 밥알들

새애액하고 내쉬는 하얀 숨소리가 

오래된 선반 위에도

밤비 젖은 창문가에도

땀 송송 맺힌 콧잔등을 지나

까만 테 두른 안경알에도 내려앉는 그런 밤

 

"언니 밥이 이게 뭐야"

기다림에 잔뜩 성이 난 목소리와 마주 앉은 입에

말없이 달그락달그락 

하얀 돌멩이들이 굴러간다

 

붙잡아 어금니 사이에 가두어볼까 

목구멍 끝까지 밀어 넣어볼까

오물조물 입꼬리와 비죽 나온 입

젓가락으로 쿡 찌르니 터져 나오는 

키득키득 설익은 웃음

 

허기진 배를 채우던 밥알 사이로 

새까만 밤도 함께 숨어들었나

시끄러운 텔레비전 소리 곁에 

어느덧 노곤해진 숨소리를 누이고

지친 발자국들을 기다리는 밤

 

등 토닥이며 이불을 여며주고 있자니

그런 제 모습 뿌듯해 미소 짓다가도

닮은 얼굴 생각이나 어둔 현관을 힐끗이는 

그런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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