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전병두 목사] 승우씨가 유진을 찾아 오던 날
- 23-03-07
전병두 목사(오리건 유진한인장로교회 담임)
승우씨가 유진을 찾아 오던 날
승우군이 오레곤 주립대학교(University of Oregon)에 입학한 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졸업하고 떠난 지도 벌써 삼년이 지났습니다. 세월의 흐름은 의식의 흐름 보다 몇배는 더 빠른 것 같습니다.
그가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 도시인 유진을 찾아왔을 때의 모습은 앳된 우리 막내 아들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승우군의 밝은 웃음도 어쩌면 그렇게 빼닮았을까...
기말 시험을 앞둔 긴박한 때도 그는 긴장하거나 서둘지 않았습니다. 성악을 전공한 어머님이 아름다운 음성을 아들에게 그대로 전해준 것처럼 승우 군은 아름다운 음성으로 찬양하기를 즐겨하였습니다.
매년 개최하였던 음악회때 그는 특송을 불러 관중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하였습니다. 주일이 오면 찬양팀을 리드하며 청중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기도 하였습니다.
졸업 후 승우군이 유진을 떠날 날이 하루 하루 다가올 때 우리는 속앓이를 많이 했습니다. 긴 노끈으로 태양 빛이라도 묶어 두고 싶었습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간 뒤 그가 즐겨 앉았던 자리는 너무 컸습니다. 승우군에 대한 생각이 차츰 희미해져 가던 어느 날 연락이 왔습니다.
“...오는 2월 24일에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신혼여행을 유진으로 가겠습니다...” 결혼한다는 소식에 우리는 환호했습니다. 더 기쁜 일은 유진으로 달려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꿈을 꾸는 것 같았습니다.
그가 도착하는 날이 밝았습니다. 우리 부부는 신랑 신부를 맞이 할 기쁨으로 아침부터 마음이 들떴습니다. 아내는 떡국을 끓이기로 하였습니다.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준비하고 대파와 마늘, 소고기를 다져넣어 준비하였습니다.
어릴 적 설날을 앞두고 어머니가 만들었던 떡국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예정대로 승우씨가 도착하였습니다. 그를 보는 순간 마치 입대한 아들이 휴가 나온 것 같은 반가움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아내도 사랑하는 아들을 맞이하는 행복한 웃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잠시 후에 승우씨가 입을 열었습니다. “제 아내 김유진입니다...” 놀랍게도 신부의 이름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이름인 “유진”과 같았습니다. “승우씨가 유진이라는 이름을 보고 신부에게 반한 모양이네요...” 아내의 농담에 우리 모두는 함께 웃었습니다.
신부 유진씨는 고운 얼굴에 지성미를 함께 갗추고 있었습니다. 초면이었지만 오래 동안 함께 교제를 나누어 온 친구같았습니다.
“저와 아내가 유진에 와서 살게 된 해가 삽 십년이 되어 가네요. 승우씨를 이곳에서 만난 것은 우리 부부에게 기쁨이었어요. 유진에서 승우씨와 함께 지났던 일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즐거움 이었습니다. 승우씨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고 또 신부 유진씨를 만나게 되어 너무 좋습니다. 유진씨는 이곳 유진 마을이 마음에 드세요?” “네, 너무 좋아요. 저도 이런 곳에 살고 싶어요...”
유진씨는 이곳의 맑은 하늘, 깨끗한 환경, 친절한 주민들이 너무 마음에 든다고 했습니다.
“마음에 소원을 두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주님께서 그 소원을 들어 주신답니다. 저희도 기도할께요. 승우씨도 유진씨와 함께 기도해요. 한국에서 석사과정까지 공부했으니 이곳에서 박사과정에 입학하여 공부하도록 해요. 돈을 버는 것은 후에라도 다시 기회가 오겠지만 공부는 기회가 있답니다. 그 기회를 놓치기 전에 해야 한답니다...”.
저의 말에 승우씨 부부는 동감을 했습니다. 유진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도전해보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저와 아내는 기도 목록에 한가지를 더 추가하기로 했습니다.
승우씨 부부가 유진으로 와서 공부할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이튿 날 승우씨 내외를 집 가까이에 위치한 파파스 피자 집으로 초대하였습니다. 피자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습니다.
우리 네 사람은 따끈따끈하게 막 구워낸 피자를 즐겁게 먹었습니다. 평안한 대화와 함께 나눈 피자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피자 집 문을 나선 후 아내는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했습니다.
마침 옆을 지나가던 경찰관에게 아내는 용감하게 말을 건냅니다. “헬로우 포토 플리스...” 아내는 핸드폰을 넘겨 주었습니다. 등치가 큼직한 경찰관은 씩 웃음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의 큰 손안에서 카메라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습니다. 피자 집 마당을 빠져 나오면서 아내가 말했습니다.
“우리 또 만나요” “네, 오늘 고마웠습니다. 다시 뵙겠습니다”. 따뜻한 봄 빛이 승우씨 부부의 등을 감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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