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이 에스더] 한결같은 것은 없는

이 에스더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한결같은 것은 없는


3월이다. 연초에 단단히 매었던 신발 끈이 어느새 풀려 있다. 체로키 원주민들의 2월은 홀로 걷는 달이라기에 흉내라도 내볼까 했더니 그런 바람은 바람에 흩어지고 말았다. 그럼, 3월은? 3월은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달이라 했다.

숫자 3에 꽂혔다. 3에 낚인 마음이 숫자를 따라간다. 3을 슬그머니 뉘어보니 젖 냄새가 몽글몽글 피어난다. 3은 인간이 세상에 나와 가장 먼저 대하게 되는 숫자가 아닐까. 엄마의 품에서 어렴풋이 익힌 3의 형상이 숫자와 도킹하는 순간 3은 이미 완전함의 상징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세상 어디에도 엄마의 품 같은 곳은 없으니까. 3을 닮은 엄마의 가슴은 누구나 이르고픈 온전한 평온의 근원일 게다.

하루 세 끼를 먹고, 가위바위보를 하고 놀면서 자연스레 3의 무게와 세 번의 의미를 알게 된 것 같다. 삼색 신호등을 보며 삶의 길에도 가야 할 때와 멈춤의 때가 있고 돌아가는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혼란스러웠던 젊음이 빠르거나 더디게 혹은 멈춘 듯하며 지나갔다. 정반합이 이루는 삼각형을 이해하고 스스로 삼각형을 만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픔이라 여겼던 각은 합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자신을 굽힐 줄 아는 용기와 타인을 향한 배려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3을 왼쪽으로 돌려서 끝을 살짝 잡아당기면 새의 날개가 된다. 3월엔 움츠렸던 날개를 펼칠 만한 때이다. 높은 곳이 무섭다던 막내가 어느 날 낙하산을 한 번 타고 나더니 무서움을 떨쳐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하늘을 나는 게 어찌 자유롭고 가볍기만 할까. 추락하는 것들은 모두 날개를 가졌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알고 있을까. 햇살을 등에 업고 빛을 향해 날아오르는 세 마리의 새를 그려본다.

상대의 진심에 다가가는 수 역시 3이다. 거짓말 하는 아이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 하면 눈동자가 흔들리다가 결국 사실을 털어놓게 된다. 3의 힘이 세다. 예수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예수가 세 번 물었다. 나를 사랑하느냐고. 베드로는 예수를 사랑한다고 세 번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물고기를 잡던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변했다. 3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에너지가 있다.

3월은 행진을 시작하기에 알맞은 달이다. 나는 3월에 결혼했고, 세 딸을 기르며 함께 성장했다. 1과 2의 세계에는 없었던 새로운 것들을 3의 세상에서 경험했다. 3은 생명의 수이다. 남편과 함께 이인삼각으로 등반 중인 삶이 어느덧 정상을 넘어섰다. 이제부턴 산을 오를 때 놓쳤던 것들을 보기 위해 찬찬히 걸으려 한다. 물음표보다는 느낌표와 말없음표의 울림이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 점 세 개 속에 담긴 침묵의 멋과 깊이를 내 안에 더하고 싶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3의 미덕을 닮아가는 3월이었으면 한다.

한쪽이 열려 있는 3의 모양을 따라 팔을 벌려 본다. 멀리서 사는 아이들을 향한 마음이 3의 품에 가득하다.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가 떠오른다. 그림 속 아버지의 손은 그 모양이 서로 다르다. 한 손에는 부성이, 다른 한 손에는 모성이 그려져 있다. 탕자의 이야기보다 그림이 마음에 더 와닿는 까닭이다. 탕자가 그랬듯이 깨진 삶의 조각들을 붙들고 내가 찾아간 곳도 두 개의 다른 손을 가진 아버지의 품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었다. 3이 아름다운 것은 그 품이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3은 내게 사랑의 깊이를 알아가게 하는 절대수이다.

아라파호 원주민의 달력에 의하면, 3월엔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덕스런 마음을 나무라지 않아도 되는 너그러운 달이 3월이다. 한결같을 수 없는 달에는 한결같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작심삼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때, 다시 작심하기 좋은 달이다. 새로운 것을 향해 행진을 시작하는 달에는 마음껏 가슴을 부풀려도 괜찮다. 설레고 부푼 가슴이 오히려 멋있게 보이는 때이니까.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 3월의 창을 활짝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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