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이 쏘아 올린 '정찰 풍선'… "美, 결국 협상력 우위 쥐었다"
- 23-02-05
中 정찰 기구 잇따라 포착…中 "불가항력 서풍에 유입된 민간 기구"
전문가들 "2024년엔 대만·美 대선…미중 대립 구도 악화할 듯"
경색된 미중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미 국무부 장관의 방중이 '정찰 풍선(surveillance balloon)'이란 변수를 맞아 전격 연기되면서 양국 간 갈등은 더욱 악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본토와 중남미에서 포착된 '정찰 풍선'을 두고 미 당국이 중국을 콕 집어 '주권 침해'라며 고위급 대화를 일방적으로 연기하자, 중국은 해당 기구가 서풍에 휩쓸려 유입된 것일 뿐이라는 해명을 이틀 연속 되풀이했다.
특히 중국은 미 정치인들과 언론사들이 사실관계 확인 없이 중국을 비방하고 위상을 실추시키는데 급급하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나 중국의 의도가 무엇이 됐든, 블링컨 장관이 방중 일정을 재개할 경우 미국은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 '외교재개' 기대감 나타냈던 블링컨, 방중 끝내 무산
오는 5일부터 이틀간 블링컨 장관은 중국 베이징에 방문해 중국 외교라인의 투톱인 왕이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과 친강 외교부장과 대면할 예정이었다.
블링컨 장관은 방중을 앞두고 미국의 한 대학교 강연에서 "국제 사회는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하길 기대한다. 우리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자국에도 영향이 있을 것이라는걸 알기 때문"이라며 중국과의 외교적 대화 재개에 기대감을 나타냈다.
미국 국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하는 건 트럼프 행정부 시절인 2018년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이후 처음인데, 양측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무역, 마약 대응 등의 사안을 논의할 예정이었다. 이는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미중 정상회담 후속 논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블링컨 장관은 현지시간으로 3일 한미 장관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박진 외교부장관에 양해를 구한 뒤 "중국의 용납할 수 없는 조치를 고려해 예정돼 있던 방중 계획을 연기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아울러 블링컨 장관은 왕이 주임을 비롯해 여러 루트를 통해 중국 정부와 직접적으로 해당 문제와 관련해 소통 중이라고 설명했다.
◇ 사흘만에 中 '정찰 풍선' 2곳서 포착…"ICBM 발사기지 인근"
미주에서 중국의 정찰 풍선이 포착된 것은 미 현지시간으로 1일이었다. 정찰 풍선은 캐나다를 거쳐 미국 몬태나주에 위치한 맘스트롬 공군기지에서 약 300km 떨어진 지역, 6만 피트(18.2km) 상공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러나 미 당국은 해당 기지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지하 사일로(고정식 발사장치)가 설치돼 있다는 점을 빌어 중국이 의도적으로 정찰 활동을 벌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미 국방부는 자국 본토 상공의 고고도 정찰 기구를 탐지해 추적 중이라고 발표한 이후 풍선을 격추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파편으로 인한 잠재적 위험이 걸림돌이됐다. 결국 미 당국은 풍선이 민감 정보를 수집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뒤 풍선을 면밀히 추적·감시 중이다. 해당 기구가 며칠 간 미국 상공에서 계속 표류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다 또 다른 정찰 풍선이 이틀 만에 중남미 지역에서 포착됐다. 미 국방부 측은 해당 풍선이 미국 본토로 향하고 있지는 않는 것으로 파악했지만, 기구는 이번에도 역시 중국의 소행이라고 당국은 지목했다.
◇ 中 외교부 "서풍으로 유입된 민간 연구용 기구" 해명
침묵을 지키던 중국은 미국의 '정찰' 주장을 반박하며 이틀 연속 입장문을 내고 있다. 우선 중국 외교부 측은 미주에서 잇따라 포착된 풍선이 민간 기상 및 과학 연구용이며 불가항력으로 미국 영공에 잘못 진입했다는 주장이다.
중국 측은 자국이 일관되게 국제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국가인데, 이번 '무인비행선(정찰 풍선)'은 서풍의 영향과 자체 통제 능력의 한계로 인해 비행선은 예정된 항로에서 크게 벗어났다는 것이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다.
그러면서 양국 외교부의 책임 중 하나는 양국 관계를 적절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것이니 돌발상황에 침착하고 착실하게 대응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의 영문판인 글로벌타임스는 여기에 한 발 나아가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정찰) 억측은 카오스(혼돈)를 야기했으며, 가뜩이나 경색된 양국 관계에 더 많은 불확실성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글로벌타임스는 이번 사건이 미중간 고위급 대화를 앞두고 일어났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는 미국이 협상력 높이려는 시도"라면서도 "중국은 핵심 관심사에 대해 타협하지 않을 것이며, 선의의 교류는 환영하지만 도발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 외신들 "미중 대립 구도 심화"…전문가들 "방중 재개시 美, 협상력 우위" 분석
미국 주요 일간지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양국간 대립 구도가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찰 풍선으로 촉발된 이번 사건으로 미중간 갈등은 신장·홍콩 등 인권, 반도체 등 산업 분야, 대만에 이어 안보 사태로도 이어져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뉴욕타임스(NYT)는 "풍선의 존재와 블링컨 장관의 (방중 연기) 발표는 미중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켰다"면서 "풍선에 대한 분노가 외교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고,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정찰 풍선' 사태 이전에도 미중이 주요 현안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전망이 미미했으나, 이번 사건으로 중국과 관계를 재설정하려던 미국의 노력이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또 워싱턴포스트(WP)는 블링컨 장관의 방중 연기는 그가 중국으로 출발하기 불과 몇시간 전 이뤄졌다는 점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얼마나 '정찰 풍선'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또 중국에 유화책을 펼치지 않겠다는 입장을 극명하게 나타낸다고 지적했다.
만일 블링컨이 방중을 재개한다면,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관측도 존재한다.
미 스탠포드 대학의 국방 분야 학자 오리아나 스카일러 마스트로는 "블링컨 장관이 순방을 재개한다면, 그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당초 미국 측이 가졌던 것보다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블링컨은 중국의 반대에도 대만 방문을 강행하겠단 의지를 보였던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보다 먼저 순방을 떠나야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미 싱크탱크인 스팀슨센터 윤 선 선임 연구원에 따르면 블링컨 장관이 중국에 도착하기 전 매카시 하원의장이 먼저 대만에 방문할 경우 미중 관계는 다시 극도로 얼어붙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국 측은 더이상 미국과의 고위급 대화를 나눌 필요성을 못느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중 관계가 단기간 안에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 노트르담 대학교의 조슈아 아이젠만 정치학 교수는 블링컨 장관이 일정을 재조정하더라도, 2024년 대만과 미국에선 대선이 치러지기 때문에 미중에겐 가파른 언덕길이 놓여 있다"고 분석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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