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는 끝나지 않았다…모습이 변하고 있을 뿐"

WSJ 보고서…과거 다국적 기업들 '효율성'만 찾았다면 지금은 '안전성'도 중요해져

변화하는 안보 환경 속 다변화가 생존 전략…중국에만 투자하는 시대 지났다

 

#. 구글이 2016년 페이스북 홍콩 파트너와 함께 로스앤젤레스-홍콩을 연결하는 8000마일 길이 해저 광섬유 케이블 노선 건설 계획을 구상했을 때 미래는 밝아 보였다. 그러나 2019년 홍콩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안보 우려를 이유로 승인 신청을 취소했다.

#. 전반적인 경제활동에서 세계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61%로 정점을 찍고 내려왔다. 세계은행(WB) 자료에 따르면 현재 경제활동에서 세계무역의 비중은 57%로, △1970년대 평균 31% △1980년대 36% △1990년대 40% 추정치를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세계화는 정말 끝났을까. 16일(현지시간)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런 의제를 던진 뒤, '세계화가 너무 지나쳤는가(Has Globalization Gone Too Far?, 1997)'의 저자 다니 로드릭 하버드대 교수를 인용,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세계화의 붕괴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WSJ는 "다국적 기업들은 여전히 값싸고 효율적인 시장을 원하지만 안전도 원한다"며 "그것이 그들이 세계 무역과 금융의 경로를 바꾸는 이유"라고 전했다.

 

◇비용만큼 중요해진 안전성…무역·금융 경로 다변화

WSJ는 "과거 기업들은 인구가 젊고 저렴하게 수출용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효율적인 공급망을 모색하고, 국가 간 안보와 정치적 긴장이 방해 요인이 되지 않는다는 가정에 따라 사업했다"고 분석했다.

그것이 그간 많은 투자를 중국으로 이끈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업은 여전히 효율적이며 젊은 시장을 찾으면서도, 이제는 동시에 안전을 원한다"며 "이는 다양화를 의미한다"고 WSJ는 전했다.

미국의 대중국 규제, 중국의 코로나19 셧다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일련의 사건과 그로 인한 여파는 다변화의 중요성을 더욱 일깨웠다.

그리고 이제 다국적 기업들은 공급망을 다변화하면서 베트남, 필리핀, 멕시코 등에서 수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베트남 최대 수혜…멕시코·필리핀 등 투자 증가

WSJ에 따르면 이제 미국 수입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최고 22%에서 2022년 17% 미만으로 떨어졌다. 반면 멕시코 베트남, 필리핀, 대만, 태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 국가의 대미 수출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금융 경로도 비슷하게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국경을 넘나드는 대출은 2011년 이후 감소하다가 2016년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는데, 가장 큰 수혜국은 캐나다와 멕시코, 프랑스, 독일 등 전통적인 동맹국들이다.

동남아시아 내 미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비중도 커지고 있다. 2008년에만 해도 미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24%를 중국과 홍콩이 차지하고 싱가포르는 21%에 그쳤다면, 2021년에는 싱가포르가 38%, 홍콩과 중국이 26%로 역전됐다. 싱가포르는 베트남, 태국, 말레이시아 등 지역 투자 거점으로 꼽혀 투자 매력도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중국과 같은 공산당 체제에 약 1억 명의 젊은 인구, 높은 교육열과 경제 발전 요구 등의 유사점을 갖췄지만, 국제 정치에선 중립을 추구해 안정성이 높다는 게 시장의 미 ECV 홀딩스 데이비드 루이스 대표의 판단이다. 베트남의 관심은 이념 대결이 아닌, 성장과 번영, 외국인 직접 투자 유치에 있다.

멕시코는 미국 수출용 가전제품 생산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중국 하이센스가 현재 멕시코 북부 몬테레이에 가전산업단지를 개발, 2억 6000만 달러를 투자 중이다.

일본 유니클로는 방글라데시와 베트남에 공장을 신축하는 데 2년간 87억 엔을 투입하고 있다. 코로나19 셧다운 때 유통이 중단돼 적시 배송에 애로를 겪은 뒤 생산지 다각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점증하는 안보 우려…글로벌 투자 중요한 고려 요인

어쨌든 세계화는 끝난 게 아니라 그 양상이 변화하고 있을 뿐이란 게 WSJ의 결론이다.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백악관 관료를 지낸 제이크 시워트 워버그 핀커스 정치위험감독책임자는 "재세계화는 아직 초기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공급망은 30년 또는 그 이상에 걸쳐 구축됐다"며 "이런 게 하룻밤 사이에 완전히 풀릴 거라는 생각은 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럼 앞으로의 세계화는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까.  

장기 팬데믹의 발병 가능성과 신(新) 냉전으로 치닫는 새 안보 지형, 미·중 충돌 우려와 높아진 전쟁 발발 가능성 등은 앞으로 글로벌 기업의 해외 투자에 있어 더욱 중요한 고려요인이 될 전망이다.

로드릭 교수는 WSJ에 "새로운 세계화는 이미 관세, 제재, 수출 통제의 사용으로 무기화됐다"면서 "가장 큰 위협은 이제 평화와 안보에 있다"고 말했다.

구글은 결국 홍콩 광섬유 프로젝트를 접고 2021년 말 대만과 필리핀 내 케이블 설치 사업을 승인받았다. 그러나 이제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들어, 필리핀 루손 노선과 함께, 다양화에 중점을 두고 자바해를 거쳐 싱가포르로 가는 새로운 노선을 계획하고 있다고 구글 관계자는 WSJ에 전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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