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시-박상화] 계묘를 듣다

박상화(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계묘를 듣다


빛이 있으라 말씀이 계실 때

듣는 귀가 있었더니라

그리하여 빛이 있었더니라

빛은 흑암 속에서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더니라

눈앞이 캄캄한 네 속에 빛이 있다고

태초의 첫 말씀이

듣는 이를 위한 위로였더니라


계묘년엔

일 년만 듣자, 일 년만

듣는 것으로 사랑한다고 말하자


왜 이목구비라 하던가

생명이 생기면 먼저 듣기 때문이고

죽어갈 땐 냄새가 먼저 없어지고

말을 못하고 못보고

그리고 듣지 못하면 죽음이기 때문이지

듣는다는 건 자세히 보는 것인데

자세히 보는 게 사랑이기 때문이지


무서운 입의 해가 가고

귀가 큰 해가 온다는 건

가만히 들을 줄 아는 해가 온다는 것.


계묘년

부활의 일요일로 밝아오는 새해,

듣기만 해도 평화는 훨씬 가까워진다

갈라진 입은

오물오물 먹는 데만 쓰자

첫사랑 연분홍빛 살구 꽃잎일 때 그대가

얼마나 듣기에 열중했던지 기억하고

듣는 사랑이 얼마나 그대를 달구었던지 기억하고

재림의 생명도

듣는 일로부터 오는 것을 기억하자

길도 진리도 생명도

말씀을 듣는 일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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