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수필-한지나] 다시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 23-01-02
한지나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다시 희망의 씨앗을 뿌리며
여명이 밝아온다. 밤새 잠들어 있던 만물이 조금씩 기지개를 켜며 어둠을 걷어낸다. 자박자박 걸어오던 새벽이 오늘은 묵직한 걸음으로 울림을 준다. 새해 아침이다.
시간은 막히지도 않고 쉬지도 않으면서 그저 담담히 흘러간다.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시간에 사람들은 눈금을 만들고 칸을 만든다. 그리고 한 시간, 하루, 한 달, 한 계절, 한 해로 단위를 나눈다. 그렇게 구분한 한 해가 속절없이 지나면 우리는 또 새해를 맞이한다. 그래서 새해 아침은 어제와는 전혀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 된다. 자세가 달라지고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새해 결심도 한다. 흡연자들은 금연을 시도하고 나쁜 습관을 고치려고 애쓰고, 주위 사람들은 다이어트와 운동을 시작한다. 비록 오래가지 못해도 자신을 향해 꿈꿔보는 행복이다. 고행 길을 자처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좀 더 나은 앞날을 위하여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기대한다.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부산 해운대에서 해돋이를 보았다. 일정에 없었지만,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기에 활력을 얻기 위하여 꼭두새벽에 바다로 나갔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뿌연 어둠 속에서 하염없이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수평선 위로 빛이 조금씩 새어 나오더니 황금빛 줄기가 퍼지면서 내밀한 몸짓으로 봉긋이 오르다가 순간 둥근 해가 불끈 솟아올랐다. 장관이었다. 떠 오른 태양 빛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어둠 속에 잠겨 있던 것들이 힘차게 자기의 색과 모습으로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태양은 모두에게 골고루 빛을 주는 행복 바이러스였다. 내 속에서도 꿈틀거리는 힘이 솟았다. 마음속으로 번져가는 밝은 빛을 느끼면서 처진 어깨를 폈다. 다시 희망을 낚아 올리고 있었다. 그날 해돋이는 약동하는 생명의 환희를 되찾아 주었다.
새해는 겨울의 한 가운데에 있는 1월에 시작한다. 어린 시절, 설날이 왜 겨울 한복판에 있는가?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추운 날씨에 설음식을 장만하는 어른들의 손길이 안쓰러웠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던 시절에 꽁꽁 언 길을 살얼음 밟듯이 조심하며 먼 곳에서 찾아오신 종친 어르신들의 불편한 여행담을 들으면서 따뜻한 계절이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자라면서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은 먼 길을 왔기에, 길이 고생스러웠기에, 만남의 기쁨은 컸고 더 반가웠지 싶었다. 저절로 오는 것이나 쉽게 얻는 것에 우리는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대신 어렵게 내게 오거나 얻은 것은 소중하게 여기고 마음에 새긴다. 새로운 결심과 포부는 겨울의 삭풍 속에서 주눅 든 마음을 부풀어 오르게 한다. 추운 날씨를 헤치고 찾아온 설날은 희망의 불씨를 풀무질하며 얼어있는 마음을 녹여준다.
중국 작가 루쉰은‘고향’에서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사람이 자주 다니면 없던 길도 생기듯,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희망은 만들어진다. 내가 꿈꾸면 희망이 되고 실천하면 열매를 맺는다. 철학자 칸트도 행복의 세 가지 조건으로 첫째 할 일이 있고, 둘째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며, 셋째 삶에 희망을 품는 것이라고 하였다. 희망이 있다는 것은 삶의 가치를 높여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삶이 아무리 힘들고 지쳐도 포기하거나 돌아갈 수 없다. 시간과 함께 오로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나아간다는 것은 맞바람과 맞닥뜨리는 것이다. 붙박이인 식물과 달리 사람은 움직이는 동물이기에 움직이는 속도만큼 저항을 받는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저항을 받으며 나아가기에 어렵고 힘들다. 하지만 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이정표를 점검하면서 불확실한 미래이지만 희망을 품고 열심히 나아간다면 기꺼이 살아갈 힘이 생긴다.
태양이 모두에게 골고루 빛을 주듯이 시간 또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우리 앞에는 하얀 백지 365장의 스케치북이 놓여있다. 한장 한장을 어떻게 채우고 그려나갈 것인가는 각자의 몫이다. 나는 초심자의 마음으로 매일 아침을 맞이하여 의지력이 충만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다. 또한 자기 발전의 시간을 위해서 30분만 더 일찍 일어나고 싶다. 매일 30분의 실천이 쌓여 한 달, 일 년이 되면 나의 좋은 선택이 내 삶을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아침은 아직 아무것도 실패하지 않은 하루라고 한다. 우리는 아직 실패하지 않은 365일을 받은 것이다. 나의 소박한 새해 결심은 감사의 마음으로 아침을 열고 알차게 아침 시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내 속에 뿌린 희망의 씨앗이 발아되어 날마다 반복되는 적은 노력의 결실이 마음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삶의 만족은 매 순간의 노력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믿는다.
내 곁을 지나간 시간이나 머물렀던 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한 해가 끝나갈 무렵엔 무엇을 할 걸, 그랬을 걸 하는 미진한 마음과 후회를 하게 된다. 후회를 적게 하기 위해서 열심히 성실하게 살기를 다짐한다. 힘든 삶일지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힘껏 껴안고 나아갈 것이다. 이제 심호흡하고, 신발 끈을 조이고 맞바람을 향해 달려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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