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윤석호] 12월
- 22-12-05
윤석호 시인(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12월
이맘 때의 하루는 쉽게 어두워지지 않는다
별들은 대낮부터 거리로 쏟아져 내려와 깜박이고
막차 같은 시간을 따라잡으려 사람들은
쉴 새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길을 찾는다
어두운 골목길 입구, 편의점 환한 불빛이 초원 같다
종일 쫓겨 다니던 도시의 유목민들
각자의 하루를 거느리고 들어와
진열대에 놓인 가축과 작물을 골라 담는다
껍질을 벗기고 부위를 나누고 물을 붓는다
한 해 동안 뜯어먹던 시간이 다 시들어가고
이제 곧 짐을 싸고 옮겨가야 한다
포장지의 광고가 맛을 결정하지만
정작 힘든 건 허기보다 바람이다
건너편 술집에 걸린 연말 장식은
벌써 화장이 번져 있다
편의점을 나선 사람들은
모퉁이를 앞두고 머뭇거린다
담뱃불을 붙일 때마다 드러나는 얼굴들은
습관처럼 뒤를 돌아본다
내뱉는 연기에 딸려 올라온 이름 때문에
몇 번 헛기침을 한다
내용도 없이 가장자리만 선명한 기억들
내 것도 아닌 시간과 어쩔 수 없었던 마음을
그림자처럼 자르고 이제 사람들은 하나씩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다
12월의 늦은 밤거리
따뜻한 누군가에게 돌아가고 싶다
내가 길들지 못하고 떠돌아다닌 것은
너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움도 없이
가축과 작물뿐인 12월의 초원으로
다시는 혼자 되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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