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정동순] 둥근 사각형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둥근 사각형


웃픈 현실, 아는 것이 힘인가? 모르는 게 약인가? 사람들의 말 중에는 모순된 조합이 많다. 사랑과 미움은 반대인 것 같아도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점에서 시작된다. 둥근 직사각형(Rounded rectangle)도 마찬가지다. 둥글면 둥글고, 사각형이면 사각형이지 어떻게 둥글면서 사각형이란 말인가. 각이 져야 사각형이다. 하지만 수학적 정의로 설명할 수 없는 둥근 사각형이 엄연히 존재한다. 날카로운 모서리는 싫은데 사각형은 좋아. 그럼 날카로운 모서리를 좀 둥글려 볼까? 누군가 생각해냈다. 그리하여 둥근 사각형이 탄생했다.

적응하되 동화는 되지 말아라. 교육대학을 졸업할 무렵, 현장에 나가는 우리에게 모교의 김영일 교수께서 당부한 말씀이다. 적응한다는 말은 기존의 교육 환경에 익숙해지라는 말인가? 동화되지 말라는 말은 기성세대를 답습하지 말라는 말인가? 이 알쏭달쏭한 문장을 나는 아직도 가슴에 담고 뜻을 되새겨 본다. 이 문장은 이민자인 나에게 여전히 같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수많은 인종이 어우러진 타국에서 사는 일은 잠시 여행하면서 느끼는 경험과는 천양지차다. 이민자로서 생활은 내 안에 있는 나 자신과의 모순을 치열하게 겪는 과정이다. 나는 토종 한국인의 행동 양식으로 미국 생활을 할 수 없다. 한국에 온 미국인이 서울 한복판에서 미국식으로 거침없이 행동한다면 대부분 눈살을 찌푸릴 것이다.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도 있지 않은가? 반대로 미국인과 똑같이 행동하며 살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얼마만큼의 한국인의 기질을 가지고 얼마만큼 미국식으로 살아야 하는가. 균형을 잘 잡아야 하는 외줄 타기 기술이 필요하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가치관과 행동이 모순될 때가 자주 있다. 교육방식이나 문제해결에 접근하는 방식이 내 신념과 충돌할 때 나는 많이 고민한다. 일례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는 젠더 X나 트랜스젠더 학생들이 있다. 중고등 학생들이 어떻게 그렇게 일찍 자신의 성 정체성을 확신하며 자신의 성을 결정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수학을 배우는 학생들에게 문제 푸는 훈련을 중요시하지 않는 점도 동의하기 어렵다. 교사로서 내 믿음은 수학도 개념을 배운 후에는 운동이나 악기를 배우는 과정처럼 충분히 연습해야 한다. 

이민 생활에서 내 아이들이 올바른 정체성을 갖도록 교육하는 일은 큰 과제였다. 아이들을 한국 호적에도 올렸다. 그리고 증명서를 발급받아 앨범에 넣어 간직했다. 봐라, 너희는 한국 사람이다. 그러니 한국말을 잘 배우고 한국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여차하면 그 서류를 보여줄 참이었다. 엄마가 한국 사람, 아빠가 미국 사람인 아이들은 교사인 나를 따라 십 년 이상 주말 한국학교에 다녔다. 내가 한국 국적을 이탈하면, 조국을 배신한 것 같아 국적을 선택하는 일도 오랫동안 뭉그적거렸다. 그리고 아이들이 반반이(half & half) 아니라 100% 한국인, 100% 미국인으로 자라 주길 소망했다. 

아이들이 십 대가 되니 이중국적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중국적 때문에 오히려 한국에서의 활동에 제약이 따르고, 미국에서도 중요한 정부 기관에 취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나고 자란 이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직장에 다닐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물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 즈음 우리 가족의 100% 한국인, 100% 미국인이란 구호도 퇴색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좀 풀어주었다. 아이들은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목표에는 다가가지 못했지만, 일상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카톡으로 문자도 주고받는다. 한국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거나 신문에 궁금한 말이 있으면 물어보거나 찾아서 공부하는 정도다.

음과 양의 순환처럼 자연도 모순 속에서 균형을 유지한다. 자연의 흐름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도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국물이 없는 짜파게티와 얼큰한 국물 맛에 먹는 너구리가 만나 짜파구리란 조합이 나오기도 한다. 미국에서 살면서 나는 20년째 주말 한국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이렇게 영어가 아닌 한글로 글을 쓴다. 그리고 내 글이 한국인과 미국인의 조합, 나의 독특함을 알리는 도구가 되기를 원한다.

이민자의 삶도 어쩌면 둥근 사각형과 같은 삶이 아닐까. 사각형의 성질을 간직하면서도 원의 성질 대로 또 둥글어야 하는 생활이다.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간직해야 하고, 미국 시민으로 사는 생활 규범도 반듯하게 지켜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선택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다. 이는 둥근 사각형처럼 모순된 조합이다. 그러나 둥근 사각형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새로운 미적 조합이다. 이민자로서 나의 정체성이 내 안에서 불화하지 않고 둥근 사각형과 같은 조합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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