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 없어 립스틱으로 환자상태 표시…40여명에 CPR한 간호사 자매

3시간 동안 도움 손길…'가망없다'는 말 전할 때 "너무 아팠다"

 

"혹시 가위나 칼, 펜 있나요"

그때 옆에 있던 누군가 자신의 립스틱을 건넸다. 전직 간호사 김희영씨(가명·20대)는 쓰러진 이들의 몸에 립스틱으로 상태를 표시했다. 역시 간호사인 친언니와 함께 약 3시간 동안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40~50명에게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했다. 

이들 중에 의식이 돌아온 사람은 2명 정도였고, 희미하게 맥박이 돌아온 사람은 3~4명 정도였다. 안타깝게도 환자들은 대부분 이미 맥박이 없거나 심정지 상태였다고.

김씨는 31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전직 의료인으로서 현장에서 환자를 살리려 최선을 다했지만 피해자의 지인들에게 가망이 없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 29일 오후 10시 10분쯤 친언니와 함께 이태원 세계음식문화거리를 걷고 있었다.

수많은 인파 물결에 떠밀리며 걷던 그때 앞에서 "사고가 났으니 밀지 말아주세요"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주변의 시끄러운 음악과 수많은 인파의 소리로 이 외침은 멀리까지 전달되지 못했다.

곧 주변은 비명과 함께 아수라장이 됐다. 사고는 김씨 일행보다 딱 10걸음 앞에서 발생했다. 간발의 차이로 화를 면했다.

사고 초기 구조대원이 쉽게 진입을 못해 실신한 사람들 수십명은 시민들에 의해 인근 가게로 옮겨졌다. 가게 안에서 의사와 간호사를 다급히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김씨는 "전직 간호사예요"라고 말하며 인파속을 헤집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넘어지면서 실신한 30~40명의 환자가 있었다. 반사적으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환자에게 CPR을 실시했다. 주변에 119 구급대원과 경찰관, 시민들도 CPR을 하고 있었다.

환자는 많은데 도움의 손길은 부족했다. 밖에 있는 인파를 향해 "혹시 간호사인 분이거나 심폐소생술 할 줄 아시는 분 있나요"라며 도움을 요청했다. 

현장에는 대부분 실신한 사람들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어떤 환자는 외상을 입어 머리에서 피가 흐르기도 했다. 

20분쯤 지났을까. 경찰이 가게 밖에 좀 더 넓은 공간을 확보해 줬다. 그곳으로 환자들을 옮겨 응급구조사, 소방관들과 함께 계속 CPR을 진행했다. 이렇게 김씨 자매는 3시간가량 40~50명의 실신자들에게 CPR을 했다.  

이후 전문 의료진들과 함께 돌아다니면서 맥박과 CPR이 진행된 시간을 확인하는 등 현장에서 구조인력을 도우며 구호 활동을 이어갔다. 

김씨는 "현장에 필요한 의료장비와 구급인력들이 이태원 인근의 교통체증과 많은 인파로 인해 빨리 도착하지 못한 거 같아서 너무 아쉬웠다"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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