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칼럼-배종덕 목사]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배종덕 목사(벨뷰 한인장로교회 담임)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누가복음 6:20)

 

이제 열 달 된 손자가 점점 떼가 늘어갑니다. 할아버지 품에서 ‘못하게 하는 일’이 생기면 떼를 쓰다 못해 악을 씁니다. 가족들은 입을 모아 할아버지의 고집을 닮았다고 은근히 흉을 봅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손자가 닮았다고 생각이 들 때 걱정이 들었지만 성품이 좋은 엄마 아빠와 함께 좋은 모습으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즐거운 일입니다. 할아버지보다는 아들이 아들보다는 손자의 모습이 더 낫다고 생각이 듭니다.

저의 아버님은 역사의 격동기 인생전환이 필요할 때 어머님을 만났고, 샌님 같던 양반집 장손은 자신의 껍질을 깨고 일어나 험한 세상을 향해 용기 있게 나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를 만나 기독교 사역자의 가정을 이룰 수 있었고, 아들은 며느리를 만나 목사인 저 자신보다는 더 나은 모습의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누군가를 만나서 새로운 삶을 구성하고 새로운 생명을 만납니다. 그리고 변화를 경험하면서 더 나은 결과를 만납니다. 물론 그 과정에는 어려움과 마음 고생도 있겠지만 인생의 어느 시점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한 결과들을 반드시 보게 됩니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가난한 자’의 정체가 궁금하여 깊은 탐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누가는 왜 ‘돈이 없어 자유롭지 못한 자,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을까? 아기 예수의 탄생기사를 통해 우리는 그 신비를 열어 볼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인구조사 덕분에 마리아와 요셉 부부는 베들레헴으로 여행하고, 유대교의 율법 때문에 아기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여행합니다. 베들레헴에서는 로마 제국의 황제권력과 ‘만왕의 왕’이 만났고,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율법 최고의 권위와 율법의 완성자로서 아기 예수가 만납니다.

막강한 로마 제국 황제의 권력에 의해 ‘만왕의 왕’은 치욕스러운 죽음을 당했고, 종교인들의 나라,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거절당합니다. 주님은 지배자의 세상에 피지배자로, 부자들의 세계에 가난한 자로 오십니다.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가장 자리에 오시는데, 진정한 변화와 혁신은 거기에서 일어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일이며 변화는 필연적이었습니다.

여기에서 ‘가난한 자’란 ‘스스로 소외자가 되어 세상의 구원을 가져올 자’ 하나님 자신의 삶의 방식과 그 사랑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고 돈이 없어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세상에 하나님의 구원을 실천할 사람, 세상에 진정한 변화를 가져올 소외자를 의미합니다.

중심을 떠나지 않고는 가장자리로 갈 수 없습니다. 가장자리로 가지 않고는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하늘 중심을 떠나 세상으로 왔습니다. 가난한 자는 중심을 떠나는 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중심을 떠나 소외를 향해 가는 자, 고난을 선택하는 자,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달하는 자이므로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유대교의 전통에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머무시는 곳으로 하나님 임재의 상징입니다. 하나님과 세상의 접촉점입니다. 신자 자신이 성전이라면 신자는 복음과 세상이 만나는 접촉점에 존재합니다.

복음은 ‘사회의 소외된 자’가 이루어 내는 혁신입니다. 그것은 프롤레타리아가 브루조아를 제거하는 폭력혁명이 아닙니다. 구원은 황제의 폭력이나, 율법의 강제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권세는 다른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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