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펀드매니저 빌 황은 어떻게 월가 돈줄 되잡았나
- 21-03-30
세계 금융의 중심 뉴욕 월가에서 한국계 헤지펀드 매니저 빌 황(한국명: 황성국)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그가 설립한 가족재산운영회사(패밀리 오피스) '아케고스 자산관리'가 마진콜(추가 증거금요구)을 맞추지 못해 사실상 파산하면서 월가 대형은행들이 줄줄이 손실 위험에 노출됐기 때문이다.
29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의 간판지수 스탠다드앤푸어스(S&P)500은 거의 변동 없이 사상 최고 수준을 유지하며 아케고스 손실이 증시 전반에 전염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케고스와 월가 대형은행들 사이 비밀스런 파생상품 계약으로 맺은 위험은 다른 헤지펀드와의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케고스가 어떤 회사이며 어떻게 막대한 자금을 월가에서 융통했다가 파산해 뉴욕 증시를 위협하는지를 블룸버그, 파이낸셜타임스(FT), 월스트리트저널(WSJ), CNBC방송 등 주요 영미권 경제매체들의 보도를 종합해 질문과 답변식으로 살펴본다.
1. 아케고스는 어떤 회사인가?
아케고스는 빌 황 소유의 가족투자회사다. 빌 황은 월가 헤지펀드 업계의 전설 줄리안 로버트슨의 제자이며 한국계 미국인이다. 아케고스는 미국, 중국, 일본, 한국, 유럽의 상장사에 투자했다.
주로 미국 미디어업체 비아콤CBS와 디스커버리, 영국 온라인명품숍 파페치, 뉴욕에 상장된 중국 기술기업들인 GSX테크듀(교육업체), 텐센트뮤직엔터테인먼트, 바이두(검색), 아이치이(동영상스트리밍)에 집중투자했다.
FT에 따르면 아케고스 운용 자산은 설립 초기 2억달러에서 최근 100억달러로 불었다. 아케고스가 월가에서 일으킨 레버리지(차입자본)으로 주식시장에 물린 포지션은 500억달러에 달했을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추산했다.
2. 무슨 일이 벌어졌나?
CNBC방송에 따르면 아케고스 파산은 비아콤CBS가 지난주 초 모건스탠리와 JP모간을 통해 30억달러 유상증자에 나선다고 밝힌 것이 촉매제가 됐다.
아케고스가 대거 롱포지션(매수세)를 잡았던 비아콤CBS의 주가가 유상증자 소식에 크게 떨어지면서 마진콜을 유발했다. 그리고 중국 기술주에 대한 마진콜도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울렸다. 바이두의 경우 주가가 올 2월 사상 최고까지 올랐지만, 이달 중순 최고가 대비 20% 이상 빠졌다.
결국 아케고스는 잇단 마진콜을 감당하지 못해 추가 증거금을 내지 못하고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를 선언했다. 그동안 막대한 자금을 빌려줬던 월가 대형은행들은 아케고스가 보유했던 주식을 강제청산하며 대거 내다 팔아 치웠다. 이에 26일 비아콤CBS와 디스커버리는 27%씩 폭락했고 29일에도 각각 1.6%, 6.7%씩 더 밀렸다.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가 먼저 블록딜(대형 매매거래)이란 형태로 26일 장외는 물론 장중까지 200억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팔았다. 그리고 29일 노무라증권, 크레딧스위스, UBS도 아케고스에 물린 수 십억 달러어치 주식을 털어내야 한다. 이로 인해 노무라증권과 크레딧스위스는 실적 손실까지 우려한다고 밝혔고 29일 주가가는 각각 14%, 11.5%씩 추락했다.
3. 빌 황은 누구인가?
50대 후반으로 알려진 빌 황은 고등학생 시절 목사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카네기멜론대에서 경영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1990년대 초 한국으로 돌아와 현대증권에서 일하던 중 당시 고객이었던 헤지펀드계 전설 로버트슨에 눈에 들면서 월가에 입성했다.
그는 2001년 로버트슨의 지원을 받아 투자회사 타이거아시아매니지먼트를 설립해 운영자산 초기 2만5000달러에서 50억달러까지 불리며, 로버트슨의 제자 '타이거 컵스'(새끼 호랑이) 중 한 명으로 승승장구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로버트슨은 지난 2006년 한 인터뷰에서 황을 "최고의 세일즈맨"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빌 황은 중국 은행과의 내부거래에 따른 사기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2012년 4400만달러 합의금을 내고 사실상 월가에서 퇴출됐다. 이후 온라인 성경사업을 하며 재기를 노리며 같은 해 아케고스를 설립한다. FT에 따르면 아케고스는 그리스어로 창시자, 예수를 의미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빌 황은 지난 2018년 유튜브 동영상에서 자신의 투자철학을 설명하며 "하느님이 투자와 자본주의를 통해 무엇을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아질 수 있는지를 목격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4. 사기범죄 전력의 빌 황이 어떻게 월가 돈줄 되잡았나?
빌 황은 내부거래로 인해 한동안 월가 대형은행의 위험관리 부서에서 일종의 블랙리스트(제재명단)에 올라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케고스를 설립해 운영하기 시작한지 10년차인 지난해 골드만삭스는 그의 이름을 블랙리스트에서 빼고 고객으로 모셨다.
FT가 인용한 한 애널리스트의 투자노트에 따르면 빌 황은 "공격적으로 돈버는 천재(agressive, moneymaking genius)"였다.
아케고스의 프라임 브로커(헤지펀드가 필요하는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도 빌 황의 유죄판결이 그와의 거래로 챙길 수 있는 막대한 기회를 상쇄하고도 남았다고 FT에 고백했다. 결국 수수료에 굶주린 투자은행들은 빌 황이 던져주는 막대한 거래 수수료에 눈이 멀어 그의 판돈을 키워 주는 데에 혈안이 됐다고 FT는 힐난했다.
5. 어떻게, 얼마나 레버리지를 일으켰나?
FT에 따르면 빌 황은 다수의 월가 대형은행들과 총수입스왑(TRS)라는 파생상품계약을 맺어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었다. 주로 증권사, 은행들이 총수익 매도자로서 기초자산인 주식을 매입하고 해당 주식에서 발생하는 손익을 비롯한 모든 현금흐름을 총수익 매수자인 아케고스에게 수수료를 대가로 이전하는 것이다.
이러한 파생상품을 통해 은행과 증권사들은 주식을 투자하지만 주식보유에 따른 이익보상과 손실위험은 아케고스가 떠안게 된다. 아케고스가 TRS에 적극적인 것은 수수료만으로 자금을 차입해 투자해 레버리지 효과를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FT 소식통에 따르면 다수의 은행들이 아케고스에 최대 8배의 레버리지를 일으켜줬다. 다시 말해서 아케고스가 주식 1주를 살 때 7주를 추가로 매수할 여력을 은행들이 만들어준 셈이다. 어떤 거래의 경우 레버리지가 20배에 달했다고 다른 소식통은 FT에 말했다.
한 뱅커는 FT에 은행들이 수 년 동안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헤지펀드 매니저인 빌 황을 갑자기 모두 모셔가려고 안달이었다며 "(수수료)탐욕이 (규제나 위험에 대한) 공포를 짓밟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6. 상당한 지분을 매입하고도 어떻게 당국의 규제를 피했나?
아케고스가 외부 자금이 없는 패밀리오피스였기 때문에 공시의무가 없어 규제당국의 감시를 피할 수도 있었다.
외부자산을 운용하는 헤지펀드는 특정 기업의 지분 5% 이상을 취득하면 공시 의무가 생기지만, 패밀리오피스는 이러한 의무가 없다.
게다가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 10개월 전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빌 황에 대한 규제를 풀어준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SEC는 지난해 4월 빌 황이 증권회사를 운영하거나 근무하는 제재를 풀어줬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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