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여왕 서거] 격변하는 현대사 속 안정감의 상징…세계는 여왕을 사랑했다
- 22-09-09
70년 간의 일관성, 만인의 사랑 받는 군주로 만들어
유엔 사무총장 "격변의 시기에 언제나 힘을 주는 존재"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8일(현지시간) 96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영국과 영연방을 넘어 전 세계인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70년에 달하는 재위 기간 동안 폭넓은 이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은 여왕의 면모가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여왕은 영국의 최장수이자 최장기 재임 군주로서 격변하는 현대사 속에서 변함없이 중심을 지킨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된다.
여왕은 제2차 세계대전부터 현대사를 전부 목격한 산 증인이다. 공주 시절인 2차 대전 당시 영국 육군으로 참전했고, 대영제국 시기의 종식과 함께 영국 식민지를 하나 둘씩 떠나보냈다. 미국과 옛 소련이 팽팽하게 대립하던 냉전 시기를 목격했으며 공산권의 붕괴를 목도했다. 동·서독의 통일과 유럽연합(EU)의 탄생, 영국의 EU 탈퇴 등 현대사의 여러 굴곡들을 체험했다.
필립 머피 런던대 영연방연구소장은 NBC방송 인터뷰에서 엘리자베스 2세가 70년간 보인 '일관성'이 그를 사랑받는 군주로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여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 전통을 엄격히 지켰다. 총리 임명권자이면서도 의회의 결정을 존중했다. 대중 앞에 정치적인 견해를 표명하지 않았고 논쟁을 살 만한 발언은 피했다. 주 1회 있는 총리와의 면담 때도 자신의 견해를 직접 드러내지 않았다.
해마다 반복되는 의례적인 행사에서도 여왕은 언제나 충실히 자리를 지키며 왕실의 권위를 유지했다. 머피 소장은 "여왕은 헌법상 군주로서 지루한 공무들을 반복해 수행했고 단 한 번도 거기에 저항을 한 적이 없다. 그에게는 의무감이라는 게 있었다"고 말했다.
해묵은 갈등이 봉합되는 역사적인 순간마다 그 자리에 있기도 했다. 그는 2차대전 후 서독에 방문해 독일과 영국의 화해를 위해 노력했고 2011년에는 영국에서 독립한 아일랜드공화국을 방문해 그간의 갈등을 해소하려 힘썼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햇빛 아래서도, 폭풍 속에서도, 여왕은 안정과 평온, 힘의 원천이 됐다"고 회고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만나 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그의 겸손함과 유머감각, 친화력을 장점으로 꼽았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여왕의 훌륭한 유머가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여왕은 70년이 넘도록 영국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구현해 냈다"고 평가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여왕은 우아함과 위엄, 헌신으로 세계의 존경을 받았다"며 "수십년 간 격변의 시기에 언제나 힘을 주는 존재였다"고 말했다.
연예 매체 배니티페어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을 것"이었다고 평가했다. 세대와 대륙을 초월해 모두가 알아볼 수 있는 인몰이었다는 설명이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TV와 같은 현대 매체들이 발전하면서 왕족에 대한 열렬한 관심이 더해졌다. 이집트를 상징하는 스핑크스처럼 여왕은 영국을 상징하는 존재가 됐고 일생 동안 대중 문화에서 누구보다 많이 언급돼 왔다고 배니티페어는 전했다.
NBC방송은 여왕이 "끝 없는 매력의 원천이었다"며 '더 크라운'과 '더 퀸', '더 로열 하우스 오브 윈저' 등 영화나 TV 시리즈의 단골 소재가 된 점을 언급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여왕은 자신의 역할을 휼륭히 해냈고 위엄을 갖추고 있었다"면서 그의 태도와 예절, 변함없는 봉사 등을 통해 입헌 군주제를 정의하는 인물이 됐다고 평가했다.
영국의 얼굴로서 세계 곳곳을 다니며 해외 정상들과 만나 인지도를 높였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그가 90세 생일까지 최소 117개국에 다녀왔다고 계산했다. 그가 만난 미국 대통령만 13명에 달했다.
NYT는 여왕이 실질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영연방의 평등과 다양성을 옹호하며 시대를 앞서갔다고 분석했다.
로이터통신은 새롭게 재편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영국이 제자리를 찾아가려 고군분투할 때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안정의 상징으로 남았으며, 공화제를 지지하는 사람들로부터도 존경을 받았다고 전했다.
현재 왕위 계승서열 1위가 된 윌리엄 왕세자는 지난 2012년 다큐멘터리에서 "나는 (할머니가) 군주라는 직업에 생명과 에너지, 열정을 불어넣었고, 군주제를 현대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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