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공을 세운 후에는
- 22-08-15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공을 세운 후에는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나라도 대선을 치르고 나면 꼭 뒤따르는 후유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논공행상(論功行賞)입니다.
그것이 사적인 정실에 치우치거나 비합리적으로 이뤄지게 되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기 마련입니다. 그런 때에 그 공을 세운 사람이 취해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중국 고전에, 사람이 어떤 일을 통해서 크게 공을 세운 후에는 조용히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라는 뜻을 지닌 공수신퇴(攻遂身退)라는 가르침입니다
유한양행의 창업주 유일한씨는 일찍이 미국에 와서 사업을 하면서 많은 독립운동가들에게 현금으로 지원하였습니다. 해방이 되자 그때 조금이라도 독립운동에 공헌한 사람들은 모두가 그 보상금을 받고 있는데, 유일한씨는 그 보상금에 대하여 무관심하였습니다.
주위에서 보상금을 신청하라고 권유하면 “나라 잃은 국민으로서 마땅히 할 일했는데 무슨 보상이냐!”하며 다시는 거론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또 유일한씨는 오래 전에 제2한강교 근방에 넓은 땅을 아주 싼 값에 매입해두고 있었는데, 그 후 서울시가 제2한강교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 땅이 필요해서 사려고 하자 유일한씨는 그 땅을 원래 매입했던 값만 받고 시에 넘겼습니다. 주위에서는 불만이 많았지만 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건설하려고 모두가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더 많이 돕지 못해 가슴 아프다!”라고 말하자 모두가 잠잠해졌습니다.
또 하나의 일화가 있습니다. 공화당 시절 유한양행은 정권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요구받았습니다. 그러나 유일한씨는 그것이 부당한 거래가 된다는 것을 알고 그 요구를 거절하였습니다. 그 당시 어떤 기업이 정치자금을 거부한다는 것은 회사의 사운을 거는 모험이었습니다. 그러자 국세청을 통하여 강도 높은 세무 감사를 실시했습니다. 그런데 감사원들의 결과 보고가 뜻밖이었습니다. “매달 모든 지출에 우선적으로 지출한 항목이 세금이었고, 아무리 파헤쳐도 1전 한푼 탈세한 흔적이 없습니다”라는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아니 지금 세상에 그런 사람이 다 있는가!”라고 감탄하면서 약점을 찾아 징계하려던 생각을 바꾸어 유일한씨에게 산업훈장을 수여했습니다.
4ㆍ19혁명은 과거 자유당 시절, 1960년 3월15일에 실시한 선거에서 저지른 부정 선거에 반항하여 그해 4월19일에 학생들이 궐기한 봉기였습니다.
그 데모에서 수백명의 학생이 희생되었고 곧이어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 학생들과 뜻을 같이하자 혁명은 완수되었습니다.
그때 교수 데모에 앞장섰던 교수들 중에 정석해(연세대) 교수는 그날 데모에 나가면서 그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그야말로 죽음을 각오하면서 가정예배까지 드리고 집을 떠났습니다.
그가 교수들 앞에서 사회를 보면서 계속 ‘죽음’이라는 말을 반복하여 강조하자 교수들 중에서 “그 죽는다는 소리를 절제하시오”라고 불평하는 소리를 듣고는 “제가 이런 사회는 생전 처음이라 언어에 절제가 부족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사과한 후에 사회를 계속 진행하였습니다.
사실 그 당시는 죽음까지 각오하지 않고는 반정부를 외칠 수 없는 시국이었습니다. 그 혁명 이후에 정 교수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정부와 각 정당과 사회 단체들이 온갖 좋은 조건을 다 제시하면서 정 교수를 영입하려고 했지만 나라를 위하는 충정에서 죽음까지 각오했던 그에게는 그 모든 조건들이 뜬구름 같은 소리로 들렸던 것입니다.
몇년 후 혈육을 따라 미국 이민 길에 오를 수 밖에 없었던 정교수가 고국을 떠나기 전날 꽃다발을 안고 4ㆍ19 묘소를 찾아 눈물로 헌화하였습니다. 90이 가까운 노구를 이끌고 정든 고국을 떠나야 하는 노 교수의 감회가 어떠했겠습니까. “좀 더 조국을 위해 기여할 수 있었는데…” 이런 후회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공수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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