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發 전기차 기회와 위기…"현대차 美공장 조기 건설이 해법"
- 22-08-10
美, 중국산 부품·소재 전기차 보조금 제외…현대차·기아, 현지 생산부터 늘려야
전기차 시장 지각변동 기회 잡아야…"정부 미래차 육성 적극적 역할해야"
"미국 현지 전기차 생산량을 늘려야 하는 현대차가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 건설 계획을 앞당길 가능성이 높다.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다"(권용주 국민대 교수)
"전세계적으로 2026~2027년 전기차 대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더이상 시장 경제에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미래차 육성 등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추진해온 '인플레이션 감축법안(IRA)'이 미국 상원을 통과하면서 글로벌 자동차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이번 법안은 중국에서 채굴·가공된 소재와 부품이 일정 비율 이하인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고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한해서만 세액공제 혜택을 준다는 조항을 담고 있다. 중국을 배제한 미국 중심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반도체(칩4 추진)에 이어 전기차, 배터리로 확대되는 것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경우도 현재 미국에 판매하는 전기차를 전량 한국에서 생산한다는 점에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국 전기차 시장의 급속한 확대로 현대차와 기아가 수혜를 보겠지만 현지 생산 공백기를 최대한 줄여야한다는 숙제를 안게 됐다.
이 법안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40%를 감축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자동차산업 등에 3690억 달러를 투입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전기차 시장 확대를 위해 전기차 보조금 상한선을 폐지하고 최대 7500달러에 이르는 세액 공제를 제공하기로 했다. 이번주 중 미국 하원을 통과하면 대통령 서명을 통해 내년에 발효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자동차업계의 관측이다.
◇"현대차·기아, 美 현지 전기차 생산부터 늘려야"
전기차인 현대차의 아이오닉5·코나EV·아이오닉EV, 기아의 니로EV· 쏘울 EV·EV6가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들 모델은 전량 한국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한다. 이런 상태에서 법안이 발효될 경우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다. 현대차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짓고 있지만 완공은 2025년이다. 계획대로라면 약 2년간 전기차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전문가들은 현대차와 기아가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현지 생산부터 늘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미국 시장에서 2025년 출시될 전기차는 약 270종인데, 현대차그룹을 모두 합쳐도 10종이 채 안된다"며 "전기차 시장에서 초경쟁이 벌어지게 되는 것인데, 현지 생산 전기차종을 늘리는 등 대비하지 못한다면 현대차 기아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안이 통과되면 현대차와 기아는 국내에서 완성된 전기차를 미국으로 수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기존 미국의 생산기지 등을 이용해) 현지 생산부터 빠르게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차는 오는 11월부터 GV70 전동화 모델을, 기아는 내년 하반기부터 SUV 'EV9' 등을 미국에서 각각 생산할 것으로 알려졌지만 다른 경쟁업체에 비해 시기가 늦어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미국 현지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설득이 관건이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외 생산기지 확충에 대해 노조가 반대할 수 있는데, IRA 법안이 발효되고 경제상황 자체가 급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사가 위기를 공유하고 상생하는 방안을 내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에 생산량을 늘리지 않을 경우 복합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권용주 교수는 2025년 완공 예정인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의 건설을 앞당기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법안 발효 이후 미국 정부와 현대차 등이 '빅딜'을 통해 관세 부여 등을 유예할 수도 있다고 봤다. 그는 "조지아 공장이 생산을 시작하기 전에 IRA 법안이 발효되기 때문에 현대차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한데, 과거 트럼프 정부가 수입차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을 때 한국이 대규모 투자를 약속하며 유예한 바 있다"며 "현대차와 미국정부가 협의를 통해 유예 기간을 부여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IRA 법안에 따라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들도 전동화로의 전환에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단편적으로 봤을 때에는 미국 전기차 시장 확대로 우리 부품사들이 해외 수출량을 늘릴 수 있겠지만, 전기차로의 전환 준비가 안돼 있다면 오히려 미국 부품업체들에게 역할을 빼앗길 수 있다"고 했다. 이호근 교수도 "부품사들이 현재 전동화로의 전환 중요성을 못느끼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시장 규모가 커진다면 부품사의 전동화 전환에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 현대자동차 공장(HMMA). (현대차 제공) 2021.8.13/뉴스1 |
◇전기차 시장 지각변동…글로벌 완성車, 기회이자 위기
전문가들은 미국의 IRA 법안이 통과될 경우 미국은 물론 전세계 전기차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 것으로 예상했다. 이호근 교수는 "미국이 전기차 보조금 상한선 자체를 폐지함에 따라 미국을 필두로 전세계 전기차 시장이 커질 수 있다. 파이 자체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은 막대한 보조금을 지원해 2030년까지 미국 내 전기차 비중을 50%까지 끌어올릴 예정인데, 이 경우 미국 내 전기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고 글로벌 완성차들에는 새 시장이 열리는 것과도 같다는 이야기다.
다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IRA 법안이 완성차 업체에 기회가 될 것이라면서도 법안 자체가 자국 브랜드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단기적으로는 탈 중국 배터리 소재 조달이 비현실적이라 배터리 생산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법안이 통과되면 전세계 전기차 시장의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지만 문제는 이 법안이 자국 브랜드 보호와 육성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전기차 배터리 등에 중국산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현재 미국에서 판매되는 전기차의 70%가량은 보조금을 받을 수 없게 된다"며 "현대차 뿐만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모두가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인데, 그럼에도 미국에서 현지 생산하는 완성차 업체의 경우 타격이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용주 교수는 "GM과 포드, 스텔란티스 등 미국 빅3 완성차 업체들이 당장은 큰 수혜를 볼 수 있다"며 "미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고 배터리팩 합장 공장을 설립해 공급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호근 교수도 "해당 법안에 따라 미국 기업인 테슬라가 가장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이라며 "미국은 물론 전세계 시장에서 전기차를 가장 많이, 그리고 효율적으로 판매하고 있는 테슬라는 법안 통과 기세를 몰아 (보조금과 세액공제 등을 받으며) 전기차 판매량을 크게 늘릴 수 있다"고 했다.
박철완 교수는 "전체 전기차 시장 규모는 보조금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푸느냐에 달렸는데, 미국은 자국에서 생산되는 혹은 생산된 제품이 일정 부분 이상 사용된 전기차에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라며 "이 경우 전체 시장이 커지기 보다 미국 완성차 브랜드의 점유율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필수 교수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 대부분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중국 의존도가 상당히 높은 상황인데, 당장 중국산 배터리를 사용하지 못하면 미국은 물론 완성차 업체 모두가 미국에서 전기차 자체를 생산하지 못할 수 있다"며 "배터리 자체 조달을 위한 공급망 구축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중국 의존도가 높은 현재의 사슬을 끊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美 전기차 등 미래차 대규모 투자 나서는데…"정부 적극적 역할해야"
전문가들은 미국이 전기차 등 미래차로의 전환에 속도를 본격적으로 내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의 경우 미래차 등 관련 정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GDP에서 자동차 부분이 13%를 차지하는데, 정부에서 자동차 관련 R&D에 투자하는 예산은 전체의 5%도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위기 이후 자동차 산업 정책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며 "미국은 GM을 살릴 때도 60조의 돈을 투자하는 등 자동차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했고, 금융 위기 이후 미래차 인력 양성 등을 체계적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어 "우리 정부는 미래차 투자와 인력 양성 등에 대한 정책을 체계적으로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박철완 교수도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배터리 전해질에 들어가는 용매재 등의 95% 이상이 중국산"이라며 "미국이 이전부터 탈 중국을 경고해왔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한중 경제협력 등을 이유로 정부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각 기업들이 스스로 개척해 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전세계적으로 2026~2027년 전기차 대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는 더이상 시장 경제에 모든 것을 맡길 것이 아니라 미래차 육성 등에 적극적으로 역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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