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병두 목사] 은메달을 목에 걸던 그 날

전병두 목사(유진 한인중앙교회 담임)

 

은메달을 목에 걸던 그 날

 

별로 크지도 않고 유명하지도 않은 작은 도시 오레곤주 유진에서 2022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이 대회가 개최되기는 역사상 처음입니다. 

이 대회는 세계 200국가에서 26개의 종목 별로 약 1,900 여명의 대표 선수들이 참가하는 국제 대회라 유진 시민들의 자부심은 대단하였습니다. 

조국 대한 민국에서도 마라톤, 경보, 높이 뛰기 등 세 개 종목의 선수들이 참가하였습니다. 대표 선수들을 한번도 본적이 없지만 유진 교민들은 마치 가족이 찾아 오는 것처럼 마음이 들 뜬지가 몇 달이나 되었습니다. 

고향 까마귀도 반갑다는 옛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우리 나라 선수들이 메달을 목에 걸고 태극기를 힘차게 흔드는 모습이 어른거리기도 하였습니다. 

언젠가부터 새벽 기도 시간에도 한국 선수들을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의 대도시들을제쳐 두고 작은 우리 마을에서 이 국제적인 육상 경기 대회가 개최된 것은 우연은 아닙니다.

 유진에 위치한 오레곤 대학교에서 육상 선수로 활약하였던 필 나이트(Phill Knight)와 그의 코치 빌 바우먼(Bill Bowerman)이 창립한 나이키 회사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을 입은 것입니다. 한국의 이봉주 마라토너도 우리 마을에서 전지 훈련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유진은 미국에서도 육상의 성지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의 높이 뛰기 유망 우승 선수 들 중에는 한국의 우상혁 선수도 꼽히고 있었습니다. 우 선수는 가볍게 예선을 통과하였습니다. 결선 경기가 개최되는 날 우리 교민들은 삼삼 오오 경기장 관중석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일 먼저 경기에 임한 선수는 한국의 우상혁이었습니다. 흰 런닝셔츠에 뚜렸하게 새겨진 “KOREA“ 라는 글씨가 너무나도 반가왔습니다. 한국 태극기도 그려져 있었습니다. ”OREGON 22”라는 글자 위에는 “WOO” 라는 이름이 큼직하게 씌어져 있었습니다.

우상혁 선수는 침착한 자세로 팔과 다리를 두드리기도 하고 허리를 움직이기도 하면서 간단히 몸을 푼 후 심판관이 장대 앞을 비워 주자 잠시 목표물을 응시하였습니다. 우 선수는 잠시 후 스프링처럼 앞으로 달리더니 공중으로 힘차게 몸을 날렸습니다. 

이어 새우처럼 등을 굽혀 2미터 19 높이의 장대를 쉽게 넘겼습니다. 차츰 장대를 높이면서 실패하는 선수들이 늘어 났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은 선수는 카타르에서 온 바심이라는 선수와 전쟁 중에도 대표 선수를 파견한 우크라이나 선수, 그리고  한국의 우상혁이었습니다. 

바심 선수는 우상혁 선수보다 키가 더 컸습니다. 마지막 높이 2미터37도 실수없이 넘었습니다. 우상혁 선수는 두 번의 실패 후에 다시 한번 2미터 35 높이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마지막 기회를 앞에 두고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우리 교포들은 목이 터져라 외쳤습니다. 

“우상혁 이겨라!!!” 경기장 앞 좌석에 앉은 우열이와 주열이는 손으로 만들어 가지고 온 플랜카드를 높이 흔들면서 대한민국을 외쳤습니다.  저의 바로 옆에 앉아 결선을 지켜보던 아내는 우선수가 장대로 달려 가던 순간 눈을 감은 채 “주여 도와 주세요” 기도만 할 뿐이었습니다. 멀리 보이는 중계 화면에는 태극기를 힘차게 흔들며 소리치고 있는 교포들의 모습이 클로즈 업되고 있었습니다. 

숨막히는 순간이었습니다. 만일 이 장대를 넘기지 못한다면 4위로 머물 수 밖에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잠시 고요하던 운동장은 갑자기 “와!”하는 소리와 박수 소리가 운동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우리 우상혁 선수가 실수없이 장대를 잘 넘었습니다. 

1위를 한 바심에 이어 은메달을 따는 순간이었습니다. 실시간으로 성적을 보여 주는 화면에는 “WOO“ 선수 이름이 2위로 껑충 올랐습니다. 주님은 간절한 우리들의 소박한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두 차례의 실패로 고개를 떨구었던 우상혁 선수는 마지막 장대를 넘은 후 벌떡 일어나 양손을 번쩍 들고 관중들을 향하여 흔들어 주었습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다시 터졌습니다. 

이 행사를 위하여 한국에서 도착한 대한 육상 연맹 회장단을 위하여 음식을 준비한 분은 최권사님이었습니다.  그는 이 분들과 마음 편하게 대화를 나누기가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다고 실토 하였습니다. 경기를 앞두고 무척 긴장된 분위기를 깰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결승 경기가 끝나고 최권사님 댁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권사님은 갈비를 굽고 잡채를 만드는 등 한식으로 저녁 식탁을 차렸습니다.

”목사님 기도를 해주십시오“  대한 체육회 상근 부회장님이신 김정봉집사님이 기도를 요청하였습니다. ”사랑하시는 주님, 이번에 멀리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에서 훌륭한 선수단과 임원진을 유진으로 보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국 육상 경기 역사상 처음으로 이 국제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게 해 주셔서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하여 금메달을 딸 수 있도록 힘을 더하여 주십시오...“ 

기도가 끝났지만 임원 분들은 선수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느라고 밤 열두시가 넘도록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식사를 시작하자고 권해도 한사코 사양하였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저희가 아니라 선수들이지요 선수들이 도착하면 함께하겠습니다...” 

대회장님의 이 한마디는 얼마나 선수를 아끼는 가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이번 쾌거는 훌륭한 선수와 임원진의 우승을 향한 단합된 마음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의 신앙 생활을 운동 경기자로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우리가 이 세상이라는 운동장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을 동안 인솔자이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얼마나 열려 해 주시고 기다려 주실까 생각하게 하는 저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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