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우리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
- 22-07-18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우리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
1970~8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온 80~90대 노인들은 이민 초기에 겪는 망향의 그리움과 고독 위에 언어의 장벽과 문화적 충격 그리고 인종적 차별 등으로 많은 역경을 겪은 분들입니다. 더구나 부양할 가족을 위해, 고국에서는 해보지도 않은 거칠고 위험한 일까지도 감내하면서, 후세들 만은 안락한 생을 누리게 하려고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건강을 돌볼 겨를도 없이 전력을 기울여온 세대들입니다.
그 분들이 아등바등 기력이 다 할 때까지 붙들고 있던 일손을 놓고 외로운 아파트 한 켠으로 밀려난 후에도 자녀들의 장래가 못미더워 그들의 앞날을 하나님께 의탁하여 간절히 기도드리는 분들입니다.
이처럼 그 분들의 혼신을 다한 헌신의 결과로 이제 생활의 기반도 잡히고, 2세들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는데도 그분들은 자녀들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하고 더 많이 물려주지 못한 것을 한하며 말년에 자녀들에게 무거운 짐이라도 안겨주게 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그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조국의 기구한 역사와 함께 80,90평생을 살아오신 할아버지 할머니, 당신들의 하얀 모발은 일제의 모진 탄압을 목숨 걸고 헤쳐 나온 승리의 면류관입니다. 당신들의 주름진 얼굴은 6ㆍ25의 처절한 시련을 온몸으로 이겨낸 살아 있는 훈장입니다. 당신들의 굽은 허리는 전화의 폐허 위에 새 도시를 건설한 역군의 표상입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혹시라도 ‘이제는 자식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처지인데…’라는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들은 이미 살과 뼈와 에너지가 다 소진될 때까지 모든 것을 다 후손들에게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마음으로는 후손들 위해 열 번도 백 번도 더 온 몸을 바치시는 당신들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이제 무엇을 더 주신단 말입니까.
그리고 당신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값진 보화가 간직되어 있습니다. 노안으로 깊숙이 자리잡은 당신들의 안구에는 온갖 세파를 헤치고 이겨 내신 강인한 투지와 삶의 지혜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신들이 판단하시는 ‘잘 했다’이 한마디는 세상이 주는 천만금의 상금보다 더 큰 격려가 되고, 당신들이 판단하시는 ‘안 된다’ 이 한마디는 열 권 책 속에 실린 교훈보다 더 귀한 가르침이 담겨 있습니다. 할아버지의 근엄하신 태도는 가족들의 해이해진 정신과 흐트러진 옷 매무새를 바로 여미게 하시고 할머니의 자애로운 미소와 부드러운 음성은 언제나 온 집안을 따스한 온기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당신들의 지극한 정성과 축원이 있었기에 험한 사회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도 자녀손들이 저렇게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습니까. 당신들의 간절한 눈물의 기도는 총칼이 난무하는 저 살벌한 세상에서 안전한 영육의 방패가 되고 있습니다.
아, 이제는 그날들, 당신들이 뿜으신 긴 한숨 그 탄식의 날들을, 남 모르게 흘리신 눈물의 날들을, 그리고 무수한 인고와 한 서린 그날들을 망각의 묘혈 속에 깊이 묻으시고 자녀손들이 베푸는 감사의 향연을 받으시며 천만번 큰 절을 받으셔도 오히려 부족할 당신들이 아니십니까.
그러나 당신들에게는 자녀손들보다 몇배나 더 당신들의 생을 귀하게 보실 하늘 아버지가 계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당신들을 위해 마련하신 천국의 보금자리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토록 언제나 곁에 모시며 부르고 또 부르고 싶은 사랑의 언어. 우리 할머니, 우리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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