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원, '낙태합법화 판례' 결국 폐기…정치·사회적 파장 예고(종합)
- 22-06-25
반세기 낙태합법화 근거돼 온 '로 대 웨이드' 판례 뒤집어…보수 우위 대법원 구도 재확인
전체 州 절반 낙태 금지 및 제한 전망…바이든 "슬픈 날"-트럼프 "헌법 따른 것"
미국 연방대법원이 미 전역의 24주내 낙태를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對) 웨이드 판례(1973)'를 결국 뒤집었다.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 역학구도를 또 한번 실감케 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낙태권을 둘러싼 미국내 논쟁이 격화되는 등 큰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예상되며,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낙태권이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것으로 점쳐진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연방대법원은 24일(현지시간)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미시시피주(州)법의 위헌법률심판에서 '6 대 3' 의견으로 합헌 판단을 했다. 미국 연방대법원은 한국의 헌법재판소와 같은 역할도 수행한다.
연방대법원은 또 '로 및 플랜드페어런트후드 대 케이시' 판결을 폐기할 지 여부에 대한 표결에선 '5대 4'로 폐기를 결정했다. 보수 성향인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미시시피주 낙태금지법 유지에는 찬성했으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하는 데 대해선 동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법관 다수는 임신 24주 안팎의 경우 낙태권 인정한 기존 판례들은 '미국 헌법이 낙태권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잘못됐다고 판단했다.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약 50년간 여성의 낙태권을 인정하는 근거가 됐던 '로 대 웨이드' 판결도 공식 폐기됐다.
1973년 1월22일 이뤄진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미국 사회에서 낙태에 관한 헌법상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낙태 합법화의 길을 연 기념비적인 판결로 여겨져 왔다.
1971년 텍사스주에서 성폭행으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한 여성이 낙태 수술을 거부당하자 텍사스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노마 매코비라는 이름의 이 여성은 신변 보호를 위해 '제인 로'라는 가명을 썼다. '헨리 웨이드'라는 이름의 텍사스주 댈러스 카운티 지방검사가 사건을 맡으면서 이 사건은 '로 대 웨이드'라는 이름이 붙었다.
당시 연방대법원은 표결에서 7대 2로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명시된 사생활 보호 권리에 해당한다며 이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태아가 산모의 자궁 밖에서 스스로 생존이 가능한 시기에 이르기 전, 여성은 어떠한 이유에서든 임신 상태에서 스스로 벗어나는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당시 기준으로는 임신 약 28주차가 기준이 됐지만, 이후 의학의 발전으로 현재 전문가들은 그 시기를 약 23∼24주차로 봐 왔다.
그러나 이후에도 논란은 끊이지 않았고, 미 연방대법원은 1992년 '케이시 사건' 등을 통해 1973년 판결을 인정해 왔다. 로버트 케이시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의 낙태 제한 규정에 반발해 낙태를 찬성하는 지역 단체가 소송을 제기했는데, 연방대법원은 '여성이 태아가 스스로 생존이 가능할 때까지 임신을 중단할 헌법상 권리를 갖는다'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의 핵심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은 이날 공개된 다수의견에서 "우리는 '로 대 케이시' 판결을 파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헌법은 낙태권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으며, 그러한 권리는 수정헌법 14조의 적법 절차 조항을 포함해 어떠한 헌법 조항에 의해서도 절대적으로 보호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얼리토 대법관은 "'로 판결'은 처음부터 터무니 없이 잘못됐다. 그것의 추론은 유난히 약했고, 그 결정은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낙태 문제에 대한 국가적 합의를 가져오기는커녕 '로 대 케이시'는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분열을 심화했다"고 밝혔다.
얼리토 대법관은 그러면서 "헌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낙태 문제를 국민이 선출한 대표들에게 돌려줘야 할 때"라며 "우리는 이 견해를 우리가 시작한 곳에서 끝낸다. 낙태는 심각한 도덕적 문제를 제기한다"며 "헌법은 각주의 시민들이 낙태를 규제하거나 금지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로 대 케이시' 판결은 그 권한을 침해했다. 우리는 이제 그러한 결정들을 뒤엎고 그 권한을 국민들과 그들이 선출한 대표들에게 돌려준다"고 했다.
미 연방대법원이 거의 50년간 확인돼 온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가 이뤄진 것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뿌려둔 판례 변경 시도의 '씨앗'이 싹튼 결과라는 게 미 언론들의 평가다.
방아쇠가 된 사건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이던 지난 2018년 미시시피주가 제정한 낙태금지법이다. 당시는 공화당 우세주에서 낙태금지화 바람이 불던 시기다.
미시시피 낙태금지법은 로 대 웨이드 판례보다 제한된 기간인 '임신 15주' 이후의 낙태를 전면 금지한 것은 물론, 강간이나 근친상간까지 예외로 두지 않아 논란이 됐다. 유일하게 인정한 예외적 허용 사유는 의학적 응급성이나 태아의 치명적인 기형 뿐이었다.
이에 위헌법률심판이 제기됐고 1심과 2심에서 모두 부당한 법률이라는 판단을 받은 뒤 대법원의 심사 테이블에 오른 것이다.
현재 연방대법원은 대법원장 및 8명 대법관 가운데 보수 성향 6명, 진보 3명으로 균형추가 기울어졌다는 점에서 이미 예견된 판결이었다는 평가다. 현직 보수 성향 대법관 중 3명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임명됐다.
연방대법원은 작년 10월 미시시피주 낙태금지법 위헌여부 심리를 개시했고, 그 결과를 담은 판결문 초안이 지난달 2일 폴리티코 보도를 통해 유출되면서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히기도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반발에 가세하면서 다른 판결이 나오길 기대했지만, 결국 공화당과 보수 세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스티븐 브라이어 등 진보성향 대법관들은 소수의견에서 '낙태 정책 결정을 주 정부에 돌려줌으로써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다수 의견에 대해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다른 권리들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들 대법관은 "그렇다면 피임이나 동성결혼에 대한 권리는 무엇이냐. 법원이 그러한 권리들도 없애는 게 '양심적으로 중립적'이 되는 것이냐"며 "이 모든 사례의 요점은 법원이 권리에 관한 모든 것을 주에 맡길 때 중립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법원이 50년 동안 여성이 갖고 있던 권리를 박탈할 때 법원은 '양심적으로 중립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대신 그것은 권리를 행사하길 원하는 여성들에 맞서 편을 드는 것"이라고 했다.
연방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거의 즉시 전국에 파문이 일 것이며, 대략 전체 주의 절반 가량이 낙태를 금지하거나 급격하게 제한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망했다.
현재 13개 주는 '로' 판결이 뒤집히는 즉시 효력을 갖도록 설계된 '트리거 금지' 조항으로 30일 이내에 낙태를 불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낙태 금지 법안들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를 예외로 하고 있지만, 대부분은 강간이나 근친상간에 대한 예외를 포함하지 않고 있다.
대법원의 이번 결정으로 낙태권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갈등은 더욱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긴급 대국민 연설을 통해 "대법원이 미국을 150년 전으로 돌려 놓았다"면서 "국가와 법원에 슬픈 날"이라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번 판결에 대응해 낙태약 구매를 용이하게 하거나 다른 주에서 낙태 시술을 받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조치 등이 담긴 행정명령을 내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달리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폭스뉴스의 출연해 이번 판결은 "헌법에 따른 것"이라며 "오래 전에 줘야 할 권리를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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