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영목] 전쟁터가 따로 없다
- 22-06-20
윤영목(서북미 6ㆍ25참전 국가유공자회 회장)
전쟁터가 따로 없다
지난 5월 24일 텍사스 남부 유발디(Uvalde) 한 초등학교에 18세 고등학생 살바도오 라모스가 침입해 무차별 총기 난사로 19명의 어린 학생과 2명의 교사가 사살되고 17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올해만도 미국에서 27건의 학교내 총격 사건이 벌어졌다고 한다.
총기 난사로 이름 난 미국이라지만 이번 참사는 그 중 제일 큰 사건에 속한다. 어린 꿈나무들이 피어나기도 전에 한 광인(狂人)에 의해 무참히 살해됐다. 그가 사용한 총은 군용 AR-15 반자동 소총으로 상대방 다수를 동시에 사살할 수 있게 제작된 전투용 소총이다. 필자는 이 무기를 대량살상 무기 일종으로 간주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1950년대로 되돌아가서 그때의 일화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가 포병관측장교로 전방에서 복무중이던 1952년 3월 미국 오클라호마주 포트실 소재 미육군 포병학교 초등군사반 과정 파견 교육생으로 차출되어 영화에서만 보던 미국땅을 밟게되었다.
동료 선후배 장교들과 함께 인천항에 정박중이던 2만톤급 미군병력 수송선에 승선하여 일본 ‘사세보항’을 거쳐 미국으로 향했다. 이 선박에는 전투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는 수많은 미군측 장병들이 승선하고 있었다. 장장 17일간의 태평양횡단 항해후 그림에서만 보던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 다리 아래를 통과후 무사히 목적지 항구에 도착했다.
그동안 배멀미에 시달려 선내 장교식당에서의 그 진미 선박식사를 제대로 먹지못한것을 아직도 후회하고있다. 배가 부두에 정박하자 배멀미가 한순간에 사라진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무엇보다 금문교 다리 아래를 통과할때의 필자의 눈앞에 펼쳐진 한포기 그림과도 같은 그아름다운 광경은 지금도 필자 머리속에서 사라지지않고 있다. 이 지구상에서 무릉도원 유토피아 아름다운 나라(美國)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느껴졌다.
그 당시 부두에는 군악대의 우렁찬 연주와 더불어 전쟁터에서 돌아온 사랑하는 친족 장병들을 마중하기위해 모여든 가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갑판 위에서 이 광경을 내려다보면서 함께 타고온 미군측 귀환 장병들은 물론 환영차 모여든 가족들의 희생적 봉사와 공헌에 마음 속으로 깊은 감사를 표시했다. 얼마후 우리들의 하선명령이 내려지고 우리 일행은 부근 해군기지 숙소로 안내되었다. 이동 도중 버스안에서 본 광경 하나가 필자의 눈을 사로 잡았다. 그것은 건장한 경찰관이 허리에 권총을 차고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한국 경찰관은 권총이 아닌 ‘몽둥이’를 차고 있을 때였다. 얼마 전 금문교 아래를 통과할때에 느꼈던 그 평화스러운 유토피아 미국에 왜 권총이 필요할까 느끼면서 혼자 의아심을 금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미국 경찰관의 총기 휴대는 서부 전통도 있거니와 치안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는 것을 그후 알게 되었다.
이 무모한 학살사건이 발생하자 백악관을 비롯 각계 각층에서 총격 원인과 지역경찰 대응 조사와 총기 규제법 등이 논의 대상에 오르고 있다. 총격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흔히 논의되는 총포 구입자의 신원 조사와 연령제한 등 약간의 수정이 이뤄질 뿐으로 강력한 ‘미국 총기협회’와 총기 애호가들의 반대에 부딪혀서 그 이상의 규제는 제정되지 못하고 았다. 개인의 총기휴대권리를 보장하는 수정헌법 제2조 앞에서는 그 어느 누구도 감히 총기규제법 강화를 거론하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보도에 의하면 미국 인구가 전세계 인구의 5% 미만인데 전세계 민간인 총기소유자수의 46%가 미국인이라고 하니 미국인의 총기소유 규모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미국내 2020년도 총기 판매량이 무려 2,280만정이라고 한다. 만 18세가 되면 총기구입이 가능하며 우편 주문으로도 소총을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인권과 인간 생명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중요시하는 미국내에서 매년 대소규모의 총기 살상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구촌 문명국 중 최고 선진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국가 이미지에 큰 손상을 초래하고 있다.
학교가 총기난사장으로 변하고 선생들에게 총기 휴대를 운운하는 나라는 다른 선진국 어느 곳에도 찾아보기 힘들다.
국가는 어린 아동학생들의 안전과 보호육성을 책임질 의무가 있으나 미국에서는 그것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 대형 총기참사는 비록 학교 뿐만 아니라 큰 상가, 각종 집회장 등 도처에서 예고없이 발생하고 있으며 미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총격전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있다.
1965년 LA에서 발생한 왓츠(Watts) 폭동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당시 많은 한인 동포들이 그들의 생활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총기를 들고 폭도들에 대항한 불행한 사건이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미국 총기난사 문제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다. 살상무기 총기가 너무나 많은 국민들 수중에 퍼져 있고 뒷골목 암거래가 횡행하여 통제가 불가능 하다. 탁상공론 만으로는 문제해결이 되지 않으며 정치인과 국민들의 일대 결단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와중에 인접국가 캐나다의 트뤼도 총리가 용단을 내려 캐나다 국내에서의 권총 유통과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 C-21을 발의하게 됐다고 한다. 일반 시민의 일상생활에 권총이 필요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야말로 종래의 총포정책을 뒤엎는 일대 획기적인 정책이라고 볼 수 있다.
텍사스 참사 이후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시애틀지역에서도 연일 총성이 울리고 귀중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 극단적 대응조치가 절실히 필요하나 총포에 관한한 정치인들은 자기 신념과 표심에 신경을 쓰고 있을 뿐 하나같이 함구무언이다.
참사를 기회로 최소한 핵심 의제인 전투용 소총의 민간인 판매와 유통 금지법 만이라도 제정됐어야 하나 이것 역시 필자의 희망사항으로 끝나게 된 것 같다. 미국 도처에서 수시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텍사스 사건을 비롯해 모든 총격사건이 종전대로 흐지부지 처리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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