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염미숙] 마감
- 22-06-13
염미숙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마감
시간을 무한정 준다면 못할 사람이 어디 있어요? 기간 내에 해내는 것이 실력입니다. 머리를 싸매고 있는 디자이너에게 팀장이 던진 한마디 말에 드라마를 보던 내가 찬물 뒤집어썼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달에 책 한 권을 쓴다는 어느 작가의 말도 귀에 울렸다. 마감을 정해 놓고 시작하라. 정하지 않으면 영영 쓰지 못할지도 모른다.
삼학년 개학 전날이었다. 여름방학 숙제가 밀려서 밤을 새웠다. 그냥 학교에 갈 배짱도 없고 날이 새기 전에 다 해낼 수 있을까 걱정돼서 엉엉 울었다. 꿀밤을 먹이고 싶었을 텐데도 아버지는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함께 밤을 새워 주셨다.
결국, 다음 날 아침까지 숙제를 다 마쳤다. 아침에 학교 가자고 친구가 왔다. 내가 밤새 눈물 훔치며 해놓은 숙제를 황급히 베끼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자라면서 미루는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계속 짊어지고 다녔다. 시험 전날 밤새 눈 붙이지 못하고 머릿속에 암기할 내용을 구겨 넣었다. 아침이 밝으면 단어 하나라도 굴러 떨어질까 머리를 고이 모시고 학교로 가서 그대로 펼쳐 시험을 보고는 집에 오자마자 곯아떨어졌다.
저녁에 일어나 다음날 시험을 위해 또 밤을 새웠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미루다 보면 급박한 시각의 집중력은 쓸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분량이 감당할 만할 때나 가능한 일이다. 돌아보면 그건 일종의 객기였다.
노학자가 공부의 노하우를 공개했다. 일찍 시작하라. 최종본을 제출하기 전 퇴고의 시간을 더 갖게 된다. 미리 구상하고 준비할수록 완성도가 높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일찍 출발점에 섰다 해도 길이 고속도로처럼 늘 곧게 뻗지는 않는다. 극심한 정체가 찾아온다면 미리 출발했다 해도 지각할 수 있다.
좁은 길을 구불구불 돌아 마침내 종착지에 겨우 다다르기도 한다. 정체가 오면 누군가는 산책이나 목욕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태우는 일로 타는 마음을 달래기도 한다. 개학 전날 밤처럼 울 수도 없고, 나는 무엇으로 정체 구간을 빠져나와 목적지에 닿을까?
어느 젊은 작가가 매일 한 편씩 글을 올리겠으니 돈을 지불하고 내 글의 독자가 되어주겠냐고 제안했다. 작가로서의 삶을 살기로 작정한 것을 세상에 공포하고 싶었을까? 자신의 방문을 잠그고 죄수를 자처하는 작가도 있지만, 독자들과의 약속으로 자신을 묶다니. 독한 극약처방이다. 그 책임감에 짓눌리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 놀랍다.
작가는 이 도전적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나서 매일 화상도가 높아진 삶을 살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마감은 땅이 끝나는 절벽. 그 지점을 넘어서면 글은 떠나야 한다. 더 이상 작가의 소유가 아니다. 작가는 절벽 끝에 남고 글은 작가의 품을 떠나 독자에게로 날아가 안긴다. 글은 작가가 낳았음에도 작가 자신보다 더 오래 사람들의 마음 안에 살게 될지도 모르는, 또 다른 오묘한 존재가 된다.
신음이든 머리를 쥐어 뜯기든, 전율하는 영감이나 뜻밖의 돌파구이든 마감 이전에만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작가는 이 고된 노동을 자의로 선택한 사람이 아닌가. 때로는 배변의 욕구는 있으나 한 방울의 소변도 볼 수 없는 방광염의 상태처럼 고통스럽더라도, 스스로를 가두는 마감의 훈련을 시작한다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자못 궁금하다.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목록시애틀 뉴스/핫이슈
한인 뉴스
- “시애틀 한인 여러분, 유언장이나 상속 문제는 이렇게”
- 한인 꿈나무들 학예경연대회로 그림ㆍ글 실력 맘껏 발휘(+영상,화보)
- 페더럴웨이 통합한국학교도 장날행사로 여름방학들어가(+화보)
- 벨뷰통합한국학교 풍성하고 즐거운 종업식(+영상,화보)
- 시애틀통합한국학교 신나는 장날행사로 방학 들어가(+화보)
- U&T파이낸셜, 워싱턴주 한인여성부동산협회 세미나 성황
- 워싱턴주음악협회 올해 정기연주회 젊고 밝고 맑았다(+영상,화보)
- FWYSO 2만4,600여달러 장학기금 모았다
- [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김철훈 목사 소고(小考-4)
- KORAFF 한인입양가족재단 한국문화축제 연다
- 타코마한국학교, 특별한 한국어 여름학교 캠프 연다
- KWA대한부인회 평생교육원 봄학기 수료식
- UW 한인 이수인교수 삼성호암상 받았다
- [하이킹 정보] 시애틀산우회 1일 토요정기산행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시애틀산악회 2박3일 캠핑
- [하이킹 정보] 워싱턴주 대한산악회 1일 토요산행
- <속보>아동성폭행 타코마 한인군인, 택시기사 살해혐의로도 기소돼
- 600명 ‘코리아 나이트’서 스트레스 확 날렸다(+영상,화보)
- K-SCAN 한인상공인 길잡이 역할 돋보인다
- [화보] 코리아나이트 신나고 재미있었다
- 벨뷰통합한국학교 전통혼례식 "참 멋있어요"(+영상,화보)
시애틀 뉴스
- 미국 항공사 요금반환법 제정엔 시애틀 고교 영향도 컸다
- 시애틀 역사풍물인 길거리 시계 ‘부활’한다
- 워싱턴주 경제 미국서 최고로 좋다
- MS, 스웨덴 AI·클라우드 인프라에 2년간 32억 달러 투자한다
- 긱하버 퍼레이드행사서 급발진해 5명 부상(+영상)
- 시애틀경전철 무임승차 단속 강화하니 "조심해야"
- 일부 페리 탑승대기 시간 길어졌다
- 오리건 해안 홍합채취 금지됐다
- 코스트코 핫도그 가격 '1.50달러' 안올린다
- 시애틀찾은 연방의무감 "고독은 전염병, 우리 모두 대처해야"
- 워싱턴주지사 출마한 퍼거슨장관 공직자 윤리위반 시비
- 워싱턴주 식당서 오늘부터 플라스틱용기 사용금지된다
- 워싱턴주 차나 주택 보험 왜이리 비싼가? "보험료 인상이유 밝혀라”
뉴스포커스
- "푸바오 몸무게 103kg", "대나무 먹방"…中, 학대 논란에 근황 연일 공개
- 검찰 "'김건희 공개소환 방침' 사실과 달라…조사 방식·시기 미정"
- 文, '김정숙 기내식 논란'에 "치졸한 시비…부끄럽지 않나"
- 의료계 소송 대리인, '국가 상대 1000억원 손배소' 제기
- 원구성 협상 또 결렬…여 "협치가 국회법" 야 "법정 시한은 7일"
- '광주청년드림주택' 허위광고에…전세사기 폭탄 떠안은 청년들
- 밀양 성폭행 세번째 가해자 신상공개…"결혼해 딸 낳고 명품 휘감았다"
- 초등생이 무단조퇴 막는 교감 뺨 때리고 "개XX"…母는 교사 폭행
- '복귀냐 사직이냐' 기로에 선 전공의…"안 돌아간다, 의료붕괴 서막"
- "법 앞에 예외 없다"는 이원석, 지휘부 바뀐 중앙지검…김건희 소환 언제?
- 저축은행, 부동산PF 대출 연체액 석달새 ‘급증’…“2분기 더 악화된다”
- "아직 탐사 단계인데"…대통령까지 나선 유전 테마株 '활활'
- 포항 석유 탐사 주도한 美 전문가 내일 방한…검증 결과 신뢰도 제고
- 국방부 조사본부, 재검토 보고서에 "임성근, 안전 의무 다 안 해" 적시
- 민주, '김정숙 기내식' 공세 되치기…"尹 술자리 비용도 공개하라"
- 5월 물가 2.7% 10개월來 최저…"할당관세 등 안정세 지속 총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