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정동순] 빈집, 낯설지만은 않은
- 22-05-30
정동순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빈집, 낯설지만은 않은
지난 밤 옆집 차고 뒷문이 내내 덜컹거렸다. 담장 옆에 있는 나무 받침대에 올라가 옆집 마당을 내다본다. 뒷문이 반쯤 열려 있다. 바비큐 냄새가 풍기던 데크의 외등이 종일 쓸쓸하게 마당을 비춘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학교에 가지 못하는 동안 뒷마당의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노는 왁자지껄한 소리와 “캘빈, 스탑 잇.” 하고 타이르는 소리가 요란했었다. 다섯 살 캘빈이 놀던 그네와 미끄럼틀이 호젓하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은 티가 난다.
지난 여름이었다. 옆집이 매물로 나왔다. 생각보다 높은 가격이었지만 이틀 만에 집이 팔렸다. 빠르게 팔린 것도 놀라운데, 판매된 가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누군가 매물로 나온 가격보다 20만 불의 웃돈을 주고 산 것이다. 그런데 집이 팔린 뒤에 아무도 이사를 오지 않는 것이다. 알아봤더니, 홍콩의 투자회사가 주인이 돼 있었다. 그러면 누가 렌트해 들어오려나?
두어 달 지나자 다시 집수리를 하는 것 같았다. 정원사가 와서 정원도 말끔하게 손질했다. 드디어 누군가 이사를 오는가 싶었다. 하지만 집수리가 다 끝나갈 무렵, 집 앞에 매물임을 표시하는 기역자의 큰 말뚝이 다시 서 있었다. 말뚝에 달린 광고지를 보니 여름에 팔린 가격보다 20만 불이 더 붙어 있었다.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가격엔 집이 안 팔릴 거라 수군거렸다.
2주 후, 이웃들은 또 깜짝 놀랐다. 내놓은 가격보다 15만 불이나 더 높은 가격에 집이 팔린 것이다. 이 소식은 우리 이웃들에게 몇 가지 반응을 끌어냈다. 은퇴한 리오 아저씨는 이제 우리도 밀리어네어(millionaire)가 되었다며 샴페인을 마시자고 농을 쳤다. 이사갈 것도 아닌데 부동산 보유세만 또 엄청나게 오르겠어요. 부인이 말했다. 이곳 워싱턴 주는 집을 가진 사람은 공시지가의 1%를 해마다 세금으로 내야 한다. 세금이 너무 오르면 소득이 적은 은퇴자에겐 큰 부담이 된다. 좀더 젊은 앞집 네스터 씨는 오 예, 하며 휘파람을 불었다. 동네 집값도 올랐으리라는 기대보다는 업자들이 살지도 않을 거면서 주택을 샀다 팔았다 하는 현실에 나는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이곳 사람들은 대개 집값의 20% 정도 다운 페이먼트하고 나머지는 은행 융자로 집을 산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 집은 결혼 후 십 년 동안 일곱 번의 이사 끝에 가까스로 장만했다. 남편과 나의 저축으로만 목돈을 마련한 우리는 연봉도 적은 탓에 적당한 집을 찾는 일이 너무나 힘들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집들과는 거리가 먼 아주 작은 평수의 오래된 주택을 보러 다녔다. 우리 골목에는 단층으로 보이는 집들이 많고 차고가 아닌 카포트가 있는 경우가 많다. 첫 인상은 한국의 70~80년대 국민주택이 연상되었다. 이런 집들도 사려고 오퍼를 넣으면 금세 누군가가 매물로 나온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불러 우리는 번번이 탈락했다.
우리 집은 80대 할아버지가 환갑이 넘어 얻은 딸과 둘이 살고 있었다. 집을 보러 왔던 날, 집 내부는 모든 것을 다 뜯어내고 대대적으로 수리해야 할 것처럼 낡고 어수선했다. 구매자에게 매력 없는 집안 분위기 때문에 오히려 이 집이 우리에겐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았다. 널찍한 뒷마당에서 빛나는 햇살에 마음이 홀딱 빠져들었다. 계속 오퍼 경쟁에서 탈락했던 우리는 중개사를 통해 주택 가격을 몇만 불 더 주겠다 제안하고, 정성 들여 편지를 썼다. 가족사진과 더불어 우리가 어떤 사람들이며 이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직접 살 것이라고 집주인의 감성에도 호소했다. 마침내 집값을 지불하고도, 그 딸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두 달이나 더 살게 해 주는 조건으로 집을 살 수 있었다.
적막에 싸인 빈집의 불빛을 본다. 지금도 그때 우리처럼 애타게 집을 구하러 다니지만 옆집을 사고 팔았던 업자들 때문에 계속 미끄러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시차를 두고 같은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캘빈의 가족과 7년이란 시간을 이웃으로 함께 했다. “앞으로 진격!” 마당에 나갈 때면 해적 옷을 입은 캘빈이 놀이터에 올라가 핸들을 잡고 외치던 소리가 여전히 귓가로 스친다. 캘빈네는 플로리다로 이사했는데 집을 판 가격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수영장까지 딸린 저택을 샀다고 좋아했다. 지금은 조금 속이 쓰릴 것 같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금, 그때 가격보다 몇십만 불이 더 올랐기 때문이다.
동네의 주택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자 골목의 터줏대감 노인들은 집을 팔고 은퇴촌으로 가기도 하고, 젊은 축에 속하는 이들은 살던 집을 허물고 새로 집을 증축하고 있다. 집터를 닦고 뼈대가 올라가는 것을 오가며 구경한다. 예전에 골목에 살던 캐롤 할머니는 동네가 처음 생겼을 때, 자기 남편의 3년 봉급으로 집을 샀다고 했다. 우리 집은 당시 남편의 7년 정도 연봉을 주고 샀다. 지금은 젊은 직장인의 13년 치 연봉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 생각이 나 마음이 가볍지 않다. 이렇게 집값이 오르면 내 아이는 어떻게 집을 살 수가 있을까? 집값 때문에 아들이 다른 주에 눌러앉을까 걱정이 앞선다.
옆집에는 언제쯤 누가 이사 올까? 집의 정령이 있다면 부를 축적하는 욕망의 도구로 이리 팔리고 저리 팔리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슬플 것이다. 옆집을 보니 그 안에 사람의 온기와 사랑이 있어야 집의 표정도 밝은 것 같다. 집은 부의 축적 도구가 아니라 사람들이 가정을 이루고 사랑을 꽃피우는 필요충분조건이어야 하지 않은가.
지금껏 내가 살아오면서 잠시 몸을 의탁했던 여러 곳이 스쳐 간다. 거기에서 만났던 인연과 시간이 씨실과 날실로 교차한다. 이삿짐을 다 비우고 뒤돌아봤던 빈방에 늘 뭔가를 조금은 남겨두고 왔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은퇴하고 나이가 들면 우리가 아이들을 키우며 정든 이 집도 언젠가 변화를 겪을 것만 같다. 마당에는 벌써 아득한 먼 날의 그리움이 몰려온다.
마음속에 있는 빈집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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