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장로] 버려진 아기와 선교사(상)
- 22-05-30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버려진 아기와 선교사(상)
지난 20세기 중엽에 헤니가라고 하는 캐나다 선교사가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선교사가 된 동기가 특별했습니다. 그가 캐나다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을 때 1차 대전이 발발했습니다. 그때 독일군에게 침략을 당한 나라들이 캐나다에 지원군을 요청하게 되었고 거기에 응하여 캐나다도 지원군을 보내게 되었는데 헤니가도 그 지원군에 합류하여 프랑스로 파병되었습니다.
그의 부대가 북쪽으로 퇴각하는 독일군을 추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포성과 총성이 요란하고, 검푸른 포연이 솟아오르고, 길가에는 파괴된 전차들과 전사한 군인들의 시신이 널려 있었습니다.
헤니가의 부대가 어느 들녘을 따라 진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어디에 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람의 소리 같기도 했고 짐승의 울음소리 같기도 했습니다. 헤니가는 그 소리가 나는 쪽으로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어린 아기의 울음소리였습니다. 그는 급히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다른 전우 2명도 그의 뒤를 따라 갔습니다.
밭둑을 따라 약 100m쯤 갔는데 거기에 어떤 움직이는 물체가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한 젊은 여인이 유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고, 낳은 지 몇 개월 밖에 안되어 보이는 남자 아기는 살아 있었는데 엄마가 죽은 줄도 모르고 엄마의 젖을 파고 들어 그의 얼굴은 엄마가 흘린 피에 흠뻑 젖은 채 가냘프게 울고 있었습니다. 헤니가는 그 여인의 생사 여부를 다시 확인해보았지만 그녀는 이미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자! 이 아기를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거기에 그대로 버려 둘 수도 없고 전투병으로서 아기를 안고 진격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 세 군인들은 서로 마주 보며 상대방의 의중을 살폈지만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군인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학생의 티가 그대로 있는 그들로서는 군인다운 냉엄한 결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그들은 피투성이가 된 아기를 한번씩 번갈아 안아보았지만 그 생명체를 거느리고 서는 도저히 전투에 임할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어쩔 수 없이 그 아기를 죽은 엄마의 가슴 위에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 멀리서 부대장의 진격 명령이 요란하게 들려 왔습니다. 그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몇 번이고 그 우는 아기를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다가 마침내 언덕을 넘게 되자 그 모자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그 전쟁은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고 헤니가는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그는 복학을 하고 학문에 매달려야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악몽을 모두 떨쳐 버려야할 그에게 그 버려진 모자의 생각이 계속 그의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책을 읽을 때에도 강의를 들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어서도 그 장면이 악몽처럼 따라 다녔습니다.
도대체 만물의 영장이라고 불리우는 고귀한 인간이 어떻게 야생 동물처럼 저렇게 버림을 받아야 되는가. 인간을 저토록 무참히 짓밟는 전쟁이란 왜 일어나고 있으며 그 전쟁을 막을 길은 없는가.
헤니가는 인간이 저토록 처참하게 버림받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들으면서도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모두 제 갈 길을 무심하게 걷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그는 이 크나 큰 의문을 앞에 두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 모자에 대한 상념은 마치 태산준령처럼 그의 앞을 가로 막고 있어서 그 준령을 넘지 않고 서는 도저히 그의 생을 한 걸음도 전진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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