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김홍준] 화려한 13시간 외출

김홍준 수필가(오레곤문인협회 회원)

 

화려한 13시간 외출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넘실대는 4월 중순의 텅 빈 바닷가에서 수많은 사람이 맛조개를 잡느라고 여념이 없다. 거의 매일 온누리를 적셔 놓는 이 지역 날씨인데 사흘 전에는 모처럼 화창한 봄 날씨에 올봄 들어 물이 제일 많이 빠지는 날이라서인지 주중인데도 나이 든 노인들이 부부 동반해 나오기도 하고 젊은 장정들이 친구들과 같이 나와 맛조개 잡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즐기는 모습이 좋다.

나도 처음 따라나선 아내와 함께 가서 아내는 통을 들고 땀을 흘리며 애쓰는 나를 격려한다. 11cm 폭에 70cm 정도 길이의 원통형 파이프를 백사장에 힘껏 밀어 넣고 작은 공기구멍을 막고 끌어 올리면 모래와 그 속에 든 조개가 올라온다. 잡아 올릴 때마다 아내는 탄성을 지른다. 아직 미숙한 내가 대여섯 번을 시도해야 한 마리의 조개를 잡을 수 있다. 힘이 들고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1인당 20마리의 조개를 잡을 수 있다. 두어 시간 잡고 돌아와서 세어보니 크고 작은 조개가 32마리나 됐다. 절반 정도는 도구를 모래사장에 밀어 넣다가 부서지고 깨졌고 절반 정도는 온전한 상태다. 멀쩡한 것은 버킷에 길어온 바닷물에 담가 놓고 2일 후에 있을 문인협회 모임에 쓰기로 했다. 좋은 것을 보면 가깝고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면서…

부위별로 맛이 다른 싱싱한 조개를 잘 손질해 따로 담았다. 고소한 몸통 부위와 쫄깃한 맛의 기다란 목 부위, 그리고 조개껍데기와 연결되어 모래 속을 자유자재로 헤엄쳐 다니게 하는 얇은 근육 부위는 아삭아삭한 식감이 미식가의 마음을 몽땅 뺏아간다.

미리 준비해 놓은 조개와 하나님이 키워 놓으신 자연산 미나리를 9자루에 담아 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오전 8시에 포틀랜드를 향해 출발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2년여 동안 만나지도 못하고 줌을 통해 모이다가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을 생각하며 신나게 달리다 경찰에 걸리고 말았다. 신분증과 보험 카드를 주면서 “이 동네에서 마트를 운영하는 사람인데 앞으로 조심하겠으니 선처를 부탁한다”고 말했다. 차에 가서 신분을 확인한 경찰이 돌아오면서 “Have nice day!”하고 웃으며 돌아간다.

포틀랜드 지역에 살면서 주일마다 그리고 도매상에 다니느라 10년 이상을 다닌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감회가 새롭다. 식당에 모여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소개하고 각자 써 온 작품들을 나누고 의논하며 음식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

준비해간 조개 회를 나누면서 맛있다고 좋아들 하시니 잡느라고 힘들고 지하수 찬물에 두어 시간 손질하느라고 손이 시려서 힘들었던 순간들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기쁨과 보람으로 넘쳐난다.

모든 순서가 끝나고 주차장에서 하나님이 키워 놓으신 연하고 싱그러운 자연산 미나리 한 자루씩을 나누어 드리니 모두 좋아하신다. 다 나누고도 2자루가 남았다. 마침 학창 시절의 친구가 근처에 살고 있기에 전화를 해 나눠주고 내가 존경하던 목사님의 연로하신 사모님이 홀로 근처에 사시는데 운전을 못해 나올 수가 없다 하시어 주소를 확인하고 배달해 드렸다.

내가 조금 수고하면 많은 사람이 기뻐하니 나누는 기쁨이 이런 것이구나 생각하며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산골에 사는 촌사람이 모처럼 대도시에 나갔으니 내가 알고 있는 제일 맛있는 오리 요리와 아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서 돌아왔다.

역시 사람은 혼자서는 살지 못하고 어울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 같다. 팬데믹 기간 누구를 찾아가고 오는 것도 부담스럽고 모두가 힘들었던 시간이 서서히 물러가고 일상을 회복하는 것 같아서 너무 좋다.

여행하거나 누구를 방문하지 못하고 오로지 가게에서 손님을 맞으며 도매상에 물건을 사러 갈 때도 식당에 들러 맛있는 것도 사 먹지 못하고 Drive Thru를 통해 햄버거나 사먹으면서 다니던 생활에서 왕복 7시간의 운전과 몇 가지 쇼핑을 하고 13시간 만에 돌아오는 길이 육체적으로는 피곤해도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것 같아 마음은 홀가분하고 기쁘다.

사람이 감사하면 감사할 일이 많아지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다 보면 적어지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눌 수 있는 것이 늘어나는 것은 하늘의 이치인 것 같다.

이렇게 아름답고 풍요로운 지역에서 정을 나누며 어울려 살아가는 가까운 사람들과 교류하고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살 수 있는 은혜가 무한 감사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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