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북미 좋은 시-김백현] 빨래

김백현 시인(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빨래


우리는 지금 

빨랫줄에 걸렸으므로 빨래이다

버거우신가, 빨랫줄이여

물 먹은 마음으로 우리도 무겁다

헹굴수록 더 무거워진 빨래


봄은 지금  

영하에 걸렸으므로 겨울이다

찝찝하신가, 빨랫줄이여

언 마음으로 우리도 뾰족하다

파란 하늘 아래 얼어붙은 빨래


적도는 지금 

고산에 걸렸으므로 한대이다

정죄하시는가, 빨랫줄이여


둘로 꺾였을 뿐, 우리도 무죄이다

볕 좋은 남벽이 그늘 많은 북벽이

씨줄로 벌어진 일이다


지금은 옛날

재심에 걸렸으므로 여긴 포도청

안 보시는가 못 보시는가, 빨랫줄이여

바지랑대 건너편 또, 한몸의 무고한 속살

이웃이 지린 지도로 친구가 흘린 침자국으로

홑청 벗은 빨래가 앙다문 하늘을 무찌르고 있잖은가



**김백현 시인께서 최근 지병으로 작고하셨습니다. 김 시인의 명복을 빌며 재외 동포 문학상 수상작을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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