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윤영목] 봄은 왔건만…

윤영목(서북미 6ㆍ25참전 국가유공자회 회장)

 

봄은 왔건만

 

중국 당나라 시인 유희이(劉希夷)의 시에 “연연세세화상사(年年歲歲花相似)”라는 구절이 있다. 해마다 꽃이 변함없이 피어난다는 뜻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애틀에도 4월이 되면 벚꽃을 위시해서 목련, 진달래, 튤립, 민들레까지 만발하여 겨울철의 추위와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겹게 지내온 우리들을 반겨 맞이해준다.

어린 시절 한국에서 경험한 봄철은 따뜻한 봄바람에 피어난 꽃송이마다 온갓 벌레들이 날아들고 이른 새벽에는 새들의 지저귀는 노래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그런데 이곳 시애틀의 봄은 어떤가? 봄이 와서 꽃은 피는데 새소리도 들리지 않고 만발한 꽃봉오리를 찾는 벌레도 볼 수가 없다.

1962년 미시간주립대학 대학원 재학시 발간된 Rachel Carson의 <Silent Spring>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이 책이 발간되자 학계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환경 오염과 보호에 관해 새로운 인식과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당시 해충 구제를 위해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각종 농약, 특히 DDT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생태계 파괴와 영구적인 환경오염을 초래한다는 경고문이 그 책의 주요 내용이었다. 무분별한 농약 사용은 새들의 생존까지 위협하여 봄이 와도 새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내용이 그 책 제목 속에 담겨있다.

시애틀은 차디 찬 바닷바람에 거의 연일 내리는 비로 인해 봄 기온이 화씨 50도이하로 유지되면 벌레가 생존 번식할 수가 없다. 모기 같은 해충도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벌레를 먹고 사는 작은 새들도 우리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 지역에서 우리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새들은 주로 까마귀와 갈매기로 이 새들은 벌레가 아닌 인간이 버린 쓰레기 먹거리를 찾아 먹고 있다. 찬 비바람은 5월에도 겨울 코트를 입고 다니게 만들고 필자와 같은 노년층 활동에 적지 않은 불편과 제한을 초래하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올해 4월 평균 온도가 46.5도로 지난 45년 동안에 세번째로 추운 4월 달로 기록됐다고 한다. 올해 겨울에는 비도 지긋지긋하게 와서 도처에 홍수 피해도 발생해 해당지역 주민들을 괴롭혔다.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햇빛을 보기 힘들다. 모처럼 햇빛이 나면 모두가 오래 끼지 못했던 색안경을 끼고 나타난다. 시애틀 시민들의 색안경 착용률이 전국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올림픽 국립공원 일대는 1년 강우량이 100~140인치(250mm+)로 전국에서 최대 강우량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비가 잦은 곳에는 일조량이 부족해 일부 주민들은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필자가 30년간 직장 생활을 했던 콜로라도는 시애틀과 정반대로 1년 300일간 햇빛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필자는 이곳에서 시애틀의 흐린 날씨를 피해 햇빛을 찾아 이주해온 거족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여름 한 철은 기대이상의 햇빛이 쪼여진다. 가끔 여름철 햇빛과 겨울철 우기(雨期)를 반반씩 나눠 가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도 해본다. 이 세상에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기후는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으면서 날씨가 흐리고 비가 많이 와도 혹한, 혹서, 토네이도가 빈번한 타지역에 비하면 월등히 살기 좋은 시애틀임을 인정해야 되지 않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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