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 정치 불안 부른 물가 상승…인플레는 공평하지 않다
- 22-04-16
미친 물가가 부른 혼란과 반정부 시위 도미노
코로나 머니가 근원…타격은 최빈국에 집중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확장 재정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따른 후폭풍으로 전 세계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지고 있다.
16일 미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5%를 기록했다. 이는 40년래 최고인 것은 물론 월가의 예상치인 8.4%를 소폭 웃도는 수치다.
석유류를 포함한 공업제품이 물가 상승을 견인했는데, 석유류의 물가 상승 기여도(1.32%p)를 포함한 공업제품의 물가 상승 기여도가 2.38%p에 달했다. 주요 식량 물가도 크게 올랐다. 블룸버그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밀값은 약 42%, 대두는 약 26%, 옥수수는 약 30% 상승했다.
◇미친 물가가 '반정부 시위'를 부르다…정치적·지정학적 혼돈 우려
문제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부작용이 특히나 개발도상국에 가혹하다는 점이다. 이들 국가들이 대체적으로 외화가 부족한 것은 물론, 식량과 연료 등 필수 품목 가격 상승에 영향을 받는 계층이 많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는 반정부 시위는 물론 폭동까지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다. 반정부 시위와 폭동은 필연적으로 정치적 불안을 증폭시키기 때문에 쿠데타와 같은 권위주의 득세, 이에 따른 난민 발생 등 전 세계가 적지 않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당장 지난 3월 소비자물가가 6.7%나 급등한 아르헨티나의 경우 반정부 시위에 시달리고 있다. 빈곤층 수천 명이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위를 벌였는데 유혈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빈곤층이 무려 40%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페루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3월 페루의 물가 상승률은 1.48%로 2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는데 특히 석유와 비료 가격 급등으로 농민과 운송업 종사자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섰다. 시위 진압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6명에 이른다.
남아시아의 상황을 살펴보면 지난 2010년 '아랍의 봄' 마저 떠오르게 한다. 당시 반정부 시위 바탕에는 억압적인 정치 구조와 부패가 깔려있긴 하지만 대규모 시위라는 방아쇠를 당긴 것은 결국 식량과 에너지난이었다.
문제는 아랍의 봄이 발생했던 2010년 보다 현재의 식량 가격이 더 올랐다는 점이다. 공교롭게도 레바논은 식량 중에서도 밀 의존도가 80%에 이르는데 레바논 경제는 사실상 붕괴 직전인 상황이다. 2019년부터 경제 위기가 본격화됐는데 코로나 팬데믹과 베이루트 폭발 참사,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까지 겹치며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일단 국제통화기금(IMF)이 레바논에 30억 달러(약 36조 6000억원) 규모의 구제금융을 제공하기로 하면서 한숨 돌렸지만 이후가 더 큰 문제다. 레바논이 IMF의 요구 조건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지출 합리화는 물론, 강력한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한 국민 설득 작업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인플레이션으로 국민 2200만 명이 기아 위기에 빠진 나라도 있다. 자국의 통화가 한 달 만에 40%나 곤두박질친 스리랑카다. 스리랑카의 3월 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8.7%에 달한다. 특히 식품 물가는 30.2%나 치솟았다. 로이터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외화보유액은 3월 말 기준 19억 3000만달러인데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대외 채무는 40억 달러 수준이다. 당장 7월 갚아야 할 대외 채무가 10억 달러다. 성난 민심은 시위로 이어졌고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만 수천 명의 인파가 몰리며 정권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공평하지 않다…선진국의 돈 죄기와 신흥국의 긴축 발작
최근 전 세계 경제 위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지만 이번 인플레이션의 기저에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선진국이 푼 돈이 있다. 사실상 그 돈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선진국이라고 다 괜찮은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역시 40년 만에 최고치이고 유럽도 에너지난에 따른 물가 급등으로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다만 같은 인플레이션도 공평하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기초 체력이 다를뿐더러 통화를 급하게 긴축하면서 인플레이션 충격을 최소화하고 있다. 그 사이 실물경제 차익으로 이득을 본 것은 기존의 억만장자들이고 선진국들도 자금을 그대로 회수하고 있다.
전 아프리카개발은행(ADB) 수석 경제학자인 라반 아레즈키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 선임연구원은 이미 2008년 금융위기와 코로나 팬데믹을 차례로 겪은 최빈국이 경제 체력이 크게 약해져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세계은행에 따르면 최빈국의 거의 60%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에 이미 부채 위기에 처했거나 그렇게 될 위험이 높은 상태였다"라고 지적했다.
인권단체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최빈국이 채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는 '2020/21국제앰네스티 연례인권보고서: 세계 인권 현황'에서 선진국의 팬데믹 대응이 수억 명을 극심한 빈곤의 덫에 가뒀다고 지적했다.
국제앰네스티는 "2020년 4월 G20가 합의했던 450억 달러 규모의 매우 제한적인 부채 탕감은 결과적으로 103억 달러에 그쳤다"며 "더군다나 이 부채 탕감 계획은 단지 상환을 유예하는 결과를 낳았을 뿐, 본 계획에 참여했던 46개국은 여전히 364억 달러의 채무를 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프로그램은 민간 채권자들의 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했다. 전체 채무의 0.2%만이 유예됐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 같은 가운데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지속적인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달러의 유동성 극대화로 자산 가치와 인플레이션은 크게 치솟은 가운데 금리가 지속적으로 인상되면, 개발도상국들은 앞으로도 경제 위기를 이겨내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이미 달러의 가치가 상승하면서 신흥국 통화 가치는 떨어지고 있고 신흥국들의 외화 이자 부담은 커진 모양새다.
자금 유출이 예상되는 개발도상국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잇따라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는 등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만 높은 금리로 인해 자국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세계은행의 마르첼로 에스테바오 글로벌 실무담당은 향우 12개월 동안 채무 상환을 지속할 수 없는 개발도상국이 10개국 이상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경우 세계 경제가 다시 한번 요동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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