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나선 러, 조기 휴전 의도 있나…"병력 재편 시간 벌기" 무게
- 22-03-30
협상 진지했다면 마리우폴 철군했어야…전쟁 조기 종식 의도 없는 점 분명해져
우크라가 요구한 '새 안전보장' 요구도 받아들여질 가능성 없어
29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 대표단 간 평화회담 결과 러시아는 수도 키이우와 제2 도시 체르니히우 군사활동을 대폭 감축하기로 했지만, 이는 전술에 지나지 않는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서방 안보전문가들을 인용해 혹평했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의 전쟁학 명예교수 로렌스 프리드먼은 "감축은 후퇴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러시아는 전쟁을 경험적으로 보기 때문에 목표를 현실에 맞추고 있는 것"이라며 "그들이 (키이우와 체르니히우에서 병력을 빼고) 돈바스에 집중하겠다고 말하는 건 그들이 지금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알렉산드르 포민 러시아 국방차관은 회담 결과를 전화면서 '향후 협상을 위한 상호 신뢰를 높이기 위해' 키이우와 체르니히우에서 군사활동을 획기적으로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부는 이미 러시아의 진군이 정체된 지역이며, 키이우에선 러군이 우크라군의 반격에 직면했다. 러군은 키이우부터 체르니히우, 수미부터 드나이퍼 강까지 우크라군을 포위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측은 휴전과 안전보장 요구에 집중한 채, 2014년 러시아에 병합된 남부 크름(크림반도)과 친러 분리지역인 동부 돈바스 지위 관련 러시아의 영토할양 요구를 '15년에 걸친 장기 협상 과제'로 제안했다. 그러면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추가 논의를 해나가자는 식으로 유연한 요구를 했다.
반면, 러시아는 실무 협상이 타결되고 양국 외무장관이 합의안에 공식 서명한 뒤에야 정상 담판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선을 긋고 있다.
모로코를 방문 중인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러시아가 하는 말이 있고, 하는 행동이 있다"면서 "우리는 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지금 하고 있는 짓은 우크라이나와 그 시민에 대한 잔혹행위이며, 이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에 진지했다면 마리우폴 철군했어야
전문가들은 애초에 러시아가 전쟁 종식에 진지하다면, 최소한 현재 포위 중인 마리우폴에서 철군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NYT는 전했다.
아조우해를 낀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러시아군과 친러 반군이 득세한 도네츠크주 최남단에 있는 인구 45만 규모 도시다. 함락 시 크름과 이어지는 육로 확보가 가능한 데다, 반군이 득세한 동부전선과 남부전선이 하나로 이어져 러군의 동남부 우위가 막강해지는 전략 요충지다. 이에 개전 초반부터 러군의 무차별적 집중 공세를 받아 이번 전쟁 '최악의 전장'으로 꼽히고 있다.
프랑스 전략연구재단 애널리스트 프랑스아 하이스부르는 "러시아는 전쟁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에 진지하게 협상할 입장이 아니다"면서 "이것은 러군엔 오히려 식량과 탄약이 바닥나 병참 문제를 겪는 지역에서 철수하고 병력을 재편성할 기회"라고 말했다.
런던 연구기관 체텀하우스의 로빈 니블렛 소장은 이번 협상 결과에 대해 "해결책(휴전)이 아닌, 전쟁의 연속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에 진지한 협상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로써 러시아는 동부에 집중하게 될 수 있는데, 우크라이나의 경우 갑자기 제대로 반격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 푸틴이 키이우를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라고 봤다.
서방의 제재 해제 시점과 관련해서도 니블렛 소장은 "푸틴이 동부 지역을 통제하고 정착촌으로 둔다고 해도, 우크라이나가 이를 승인하지 않으면, 우리가 제재를 해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을 연구하는 프랑스 학자 마티외 불레그는 "러시아가 선의로 협상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시험하고 시간을 벌면서 군사 재편을 통해 전장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으려 한다"고 봤다. 그는 "러시아군은 1단계에 실패했지만 2단계를 통제한 것으로 보인다"며 "마리우폴을 취해 크름 육로와 돈바스를 이어 군사 우위를 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주요 도시 점령과 영토 장악을 할 수 없다는 건 전쟁 한 달이 지나면서 명확해졌다"며 "따라서 어차피 러시아의 전략적 목표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다만 러시아군의 키이우 완전 철수는 우크라이나군이 돈바스 병력을 강화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는 우크라이나 측의 중대한 승리가 될 수 있다는 게 마이크 코프만 미 해군분석센터(CNA) 러시아연구소장의 분석이다.
영국 외교관 출신으로 러시아에 주재한적 있고 주라트비아 대사도 지낸 이안 본드 유럽개혁센터 외교정책소장은 "러시아는 크름 병합 이후에도 전쟁을 멈추지 않고 돈바스 분리주의자들을 적극 지원해왔다"며 "지금 이건 2014년과 2015년에 본 장면으로, 그냥 일시 정지일 뿐"이라고 말했다.
◇우크라, '새 안전보장' 요구…실효성 없어
이날 우크라이나는 새로운 안전보장 제안을 공개했다. Δ'나토 헌장 5조'에 준하는 서방의 안전보장이 있다면, Δ나토 미가입·중립국 Δ외국군 주둔기지 유치 단념 요구를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Δ유럽연합(EU) 가입 의사를 시사했다.
이와 관련, 본드 소장은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자국의 안전보장을 요구한 국가 중 어느 나라도 지금까지 그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하며, "나토에 준하는 방위 보장이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나토 헌장 5조는 회원국 중 한 곳이 공격 받으면 전체 회원국이 지원을 개시, 집단적으로 방어한다는 상호방위 의무를 명시한 조항이다.
우크라이나는 이를 보장할 관련국으로 Δ미국과 Δ중국 Δ프랑스 Δ영국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을 포함, Δ캐나다 Δ독일 Δ이스라엘 Δ이탈리아 Δ폴란드 Δ터키를 들고 있다. 또 이들 국가 의회 비준도 요청하고 있다.
니블렛 소장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성사 가능성도 낮게 봤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EU에 가입하면 러시아보다 경제적으로 더 빨리 발전하게 될 것"이라며 "푸틴 입장에선 우크라이나가 남한이고 러시아가 북한이 되는 셈인데, 푸틴이 그것을 받아들일 리가 없다"고 말했다.
불레그 박사는 EU에 분명한 태도를 주문했다. 그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좌지우지할 문제는 아니지만, EU는 우크라이나의 가입 전망에 대해 분명한 답변을 줄 필요가 있다"면서 "그것은 도덕적인 일"이라고 강조했다. 안 받아줄 거면 지금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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