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도 오래가면 '병'…美 1년 이상의 '비탄' 병으로 등재
- 22-03-24
"고립된 이들 도움 필요" vs "병이라 이름 붙이면 압도당해"
정신질환진단·통계 매뉴얼 개정 5판…병명은 '지속적 비탄장애'
미국 의학계가 1년 이상의 지속적인 비탄을 장애로 인정하면서 치료 대상인지 여부를 둘러싼 수십년간의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간 일부 전문가들은 사회가 자녀나 배우자 등을 잃은 유족의 고통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느라 이들을 돕지 못했다면서 '극심한 슬픔'을 정신질환으로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지난주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신 출간된 '미 정신질환진단 및 통계 매뉴얼 개정 5판'(DSM-5)에는 슬픔이 지속되는 심리적 상황이 '지속적 비탄장애'(Prolonged Grief Disorder)라는 병명으로 등재됐다.
병으로 분류하는 것을 반대해온 전문가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 겪는 슬픔 등은 인간이 경험하는 근원적인 감정인데 이를 병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수지만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지속적 비탄장애'라는 진단명을 갖게 된 것은 임상에서 의사들이 이 병의 치료비를 보험회사에 청구할 수 있게 된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약의 치료제 개발이 급물살을 타게 되는 것도 의미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알코올 중독 등의 치료제로 쓰이는 날트렉손이 슬픔 치료제로 임상시험중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여전히 슬픔에 빠진 이들이 천천히, 자연스럽게 상실에서 벗어나고 있는데 병으로 규정해버리면 도리어 유약해지고 그 감정에 압도당할 것이라고 우려한다.자신이나 자신의 감정을 믿고 나아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탄을 병으로 보는 것의 시초는 1990년대 정신역학자인 홀리 G. 프리거슨이 우울증 치료 효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면서 이 감정이 우울감이나 불안감과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다. 환자들을 보면서 프리거슨 박사는 항우울제로 우울감은 약화됐지만 슬픔의 정도는 계속 강한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들은 (없는 것을) 갈망하고 그리워하는 증세를 갖는데 이는 우울증과 구별되며 고혈압이나 극단적 선택 상상 등으로 귀결되기도 했다.
프리거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슬픔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후 6개월간 최고조에 달했고 약 4%에서 그 증세가 지속되어 수면이나 일상적 기능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만 해도 미국정신의학회가 우울증 정의에 슬픔에 빠진 이들까지 넣자고 제안했다가 '과잉 진단과 과잉 치료'라는 광범위한 반발을 샀다.
당초 연구자들은 6개월 후까지도 슬픔이 계속되면 이 장애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DSM 등재는 좀더 보수적으로 1년으로 잡았다. 그리고 유족들의 4%가 이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NYT는 일각에서는 "1년이라는 시점을 두는 것은 임의적이고 잔인한 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모든 사람에게 슬픔의 감정이 있고, 6개월이든 1년이든 여전히 죽은 가족을 그리워할 수 있는데 사랑을 병으로 치부하는 것 같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기사제공=뉴스1(시애틀N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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