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생활-김 준] 직업인과 인간다움
- 22-02-14
김 준 장로(종교 칼럼니스트)
직업인과 인간다움
사람이 같은 직업에 오래 종사하다 보면 은연중에 그 직업에 동화되어 인간다움을 잃고 한 직업인으로 변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무슨 직업을 가지고 어떤 일을 하든지 모두가 공통적으로 지니고 살아야 할 요소가 있는데, 그것이 곧 ‘인간다움’입니다.
남달리 뛰어난 전문지식이나 기술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거기에 인간다움이 결여될 때 그는 직업인으로 굳어져 버리지만 그에게 인간다움이 더해질 때 직업인으로서의 틀을 넘어 인간미를 갖춘 인격체로 승화되는 것입니다.
미국 LA에는 김치를 전문으로 만들어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한 일이었지만 그 할머니는 그 직업을, ‘정 나누는 일’이라고 하면서 남다른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가게에는 나이 젊은 종업원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한결같이 ‘아우님’이라고 부르면서 서로 가족같이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간혹 돈이 모자라서 아쉬워하는 손님에게는 망설임없이 “됐시유”하면서 즉석 할인으로 너그러움을 베풀었고 김치가 참 맛이 좋다면서 찬사와 격려를 해주는 손님에게는 김치를 덤으로 듬뿍 얹어 주기도 했습니다.
그 할머니가 김치를 담아 가격표를 붙여 정가대로 받고 파는 일은 상인이라는 직업인으로서의 기본이요 권리입니다. 하지만 종업원들을 아우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돈이 모자라는 손님에게 ‘됐시유’라고 하면서 값을 감해 준다든가 고마운 손님에게 김치를 덤으로 듬뿍 얹어주는 일은 상인이라는 직업인 위에 인간미가 가미되어 나타나는 또 다른 아름다운 인간상입니다.
오래 전 대법관으로 있던 김홍섭 판사는 많은 죄수들에게 실형을 선고했는데, 그 중에는 김 판사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죄수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김판사는 죄수들에게 형량을 선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퇴근 후에나 주말에는 자기가 사형 언도를 내린 죄수들을 일일이 찾아 위로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사람은 누구나 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당신은 감옥 안에 있는 죄인이고 나는 감옥 밖에 있는 죄인일 뿐입니다.”그러면서 꼭 속죄와 구원의 복음을 전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했습니다.
죄수의 죄질에 따라 법조문에 맞춰 합당한 형량을 부과하여 선고를 하면 판사로서의 책임은 끝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김 판사는 근엄하고 원칙주의를 따르는 법관으로서의 직업인의 틀을 벗어나 따뜻한 인간다움을 발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간의 도리를 다 했던 것입니다.
여러해 전 대학 4학년이던 이지선양이 불의의 교통사고로 전신에 중화상을 입고 생사의 기로를 헤매던 때였습니다. 치료를 하던 의사가 지선양과 가족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그리고 설사 살아난다고 해도 사람 꼴은 안될 겁니다. 손가락들도 다 잘라야 해요.” 손가락을 다 자른다는 말에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혼절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의사는, “뭐 그걸 가지고 놀라요. 얼굴은 더 엉망인데”라고 한마디를 더 추가했습니다. 지선양은 그의 수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의사들 중에는 몸은 치료해 주면서 마음에는 깊은 상처를 주고 병들게 하더군요.”
그 의사가 한 말은 직업인 의사로서는 할 수 있는 말이고 또 사실에 입각한 소견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다움이 조금이라도 배여 있고 인술(仁術)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에게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말입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무슨 일에 종사하든지, 심지어 전쟁터에서나 이해타산에 밝은 시장터에서 조차도 인간다움의 향기를 발할 수 있어서 인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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