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수필-박보라] 긴 시간 속의 한점

박보라 수필가(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지부 회원)

 

긴 시간 속의 한점


연말마다 어머님께 같은 선물을 받는다. 3박 4일 호텔 숙박권. 코로나19로 인해 호캉스가 유행이라 하지 않던가. 그러니 올해 받은 것 중 단연 최고의 선물이다. 한 해 동안 수고했으니 단 며칠이라도 푹 쉬라는 어머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 덕분에 매년 연말연시는 편안하게 호텔에서 맞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견고히 쌓인 지층 같은 무늬와 무게의 커튼을 걷는다. 그 안에 신부의 비밀스러운 속사포 같은 망사 커튼도 걷는다. 그제야 세상의 숨겨진 모서리가 보인다. 백설탕을 채에 걸러 뿌려 놓은 케이크처럼 온통 하얀 가루를 뒤집어쓴 풍경. 그 위로 검은 커피 향이 지나간다. 바깥은 검은 아스팔트 위에 하얀 눈으로 덮였는데 머그잔 안엔 검은 커피 위로 하얀 설탕 가루가 쏟아진다. 마치 어느 것이 먼저였냐 묻는 것처럼.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인류 일대의 말장난. 이런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생각하고 고민하고 시간을 보내는 건 낭비라는 생각마저 든다. 지난하고, 또 지루하다. 생물학을 포함한 과학과 복잡한 철학을 들어 논리를 펼치는 행위는 인간의 고질병이다. 각지게 선을 그으려는 오래된 습관이다. 학습되었다기보단 타고난 습성에 가깝다. 아니, 그것도 학습이 먼저냐, 습성이 먼저냐를 사전적 의미까지 들추어내어 증명해야 하는 걸까. 뿌얘지는 머릿속에 카페인 한 모금으로 겨우 명료한 바깥 선을 긋는다. 그러니 드는 생각 하나. 아무것도 없던 태초에 세상이 만들어진 건 철저한 질서에 따라 즉 순서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먼저와 나중을 따지는 세상 법칙에 따라 군소리 없이 지난 시간을 살아왔다. 그걸 우선순위라 여기며 자기 합리화했을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에게는 꽤 성의 있는 삶이었다. 하루 일과, 한 달 일정, 일 년 계획을 짜고, 일의 중요도에 따라 차례로 줄을 세웠다. 완료하고 나선 볼펜을 들어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선이 면이 될 때까지 까맣게 칠해 지워 버렸다. 하지만 돌아서면 불안증이 등을 툭 쳤다. 그러면 지워버린 일이 무엇이었는지 셀 수 없이 복기해야만 했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강박의 습관이다. 실수하지 않으려는 두려움과 압박이 무거운 바위처럼 항상 날 짓눌렀다.  

때론 줄을 세우지 않는 일도 있다. 된장찌개를 끓일 때마다 고민한다. 물이 끓은 후 된장을 풀 것인가, 처음부터 풀 건인가. 혹은 채소와 고기 중엔 고기를 먼저 넣을 것인가, 채소를 먼저 넣을 것인가. 하지만 의외로 요리할 때만큼은 순서를 따지지 않는, 나름 합리적인 나만의 방식에 따라 모든 재료는 한꺼번에 처음부터 냄비 속에 투하된다. 심지어 찬 물에. 순서를 두지 않고 형식에 입각하지 않은 매우 파격적인 행보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내 이 실험의 피실험자들은 따로 언급하지만 않는다면 그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물론 고든 램지라면 눈치챌 수 있겠지만 까다로운 입맛을 가지지 않은 사람들은 내 된장찌개 앞에서 지난하고 지루한 토론을 하지 않을 것이다. 평생 미슐랭 스타를 받을 일은 없을 테니 내겐 별로 중요하지 않다. 

순환은 자연스레 흐른다. 무엇이 먼저일 것도 없고 나중일 것도 없이. 한 해가 지고, 새해가 돌아오는 것도 긴 시간 속에서 어느 한 점 시간의 일부다. 결국 이 모든 건 날 포함한, 삶을 복잡하게 만드는 인간들의 말장난일 뿐이다. 세상 모든 걸 줄 세우려는 피곤한 습성이다. 

머그잔을 들고 두꺼운 결계 같은 창 앞에 선다. 호텔 앞 로터리에선 차들이 빙글빙글 돌아가고 온 길을 다시 돌아나가기도 한다. 차가 지나간 길에 눈이 녹으며 검은 아스팔트가 다시 나타난다. 그리고 검은 커피 속으로 하얀 설탕도 녹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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